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엄재용·황혜민 부부 “은퇴 이유? 최고일 때 내려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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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등용 기자
입력 2017-10-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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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간 1000회 파트너로 호흡···은퇴 후엔 '염색' '맛집 탐방' 바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왼쪽), 엄재용 부부가 15년간 정들었던 발레단을 떠난다. 두 사람의 마지막 공연인 ‘오네긴’은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무용수들이 보통 40대 전후로 은퇴를 하는데 내 나이가 그 정도 됐다. 옛날부터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때 후배들을 위해 내려오고 싶었다. 관객들이 보기에 ‘그만해야 하지 않나’ 할 때 은퇴하고 싶지 않았다. 최고일 때 은퇴하고 싶었다.”(황혜민)

한국 발레계의 간판스타인 황혜민과 엄재용은 한국 발레사와 그 발전을 함께 견인해온 무용수들이다. 각각 2000년과 2002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두 사람은 주역 파트너로서 멋진 호흡을 자랑하며 많은 작품들을 통해 국내외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다.

학창시절 첫 사랑이기도 한 둘은 프로무대에서 재회해 동료에서 연인으로 다시 부부의 연까지 맺으며 ‘한국 최초의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로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15년간 발레 공연을 함께 해 온 두 사람이 그동안 정들었던 발레단을 떠난다. 지난 12일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아쉬운 마음과 함께 후련한 기분으로 담담히 마지막 소회를 밝혔다.

엄재용은 “발레단에서의 공연만 안 하고 그 외 소규모 공연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다. 유니버설에서만 아내와 은퇴하는 것”이라며 “최고의 자리에서 같이 마무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은퇴 결심 이유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2002년 ‘라 바야데르’를 시작으로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지젤’ ‘호두까기 인형’ ‘심청’ 등 유니버설발레단의 모든 레퍼토리에서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며 910여 회 이상 함께 무대에 올랐다. 국내외 갈라 공연까지 합치면 1000회가 넘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공연도 있을 터.

엄재용은 “모든 무용수들이 데뷔 무대를 가장 기억 남는 공연으로 꼽을 것 같다. 제 첫 전막 공연이 ‘백조의 호수’였는데 지방 공연이었다. 리허설 때 다른 캐스트 무용수가 부상을 당해 제가 이틀 연속 했는데, 그 때가 생일이기도 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발레 무용수로서의 삶에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엄재용은 “발목 수술 한 번, 무릎 수술 두 번을 받았다. 20대 초중반에는 나이가 어리니까 회복 속도도 빨라 금방 돌아왔는데 30대 접어들면서 부상을 당하니 재활 과정이 힘들었다. 재활하면서 그만 둘 때가 됐나 고민도 들고 마음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무대에서 관객이 쳐주는 박수에 받는 희열로 결국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 사람이 오랜 기간 발레 무용수로 활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크기도 했다. 황혜민의 어머니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 상’을 엄재용의 어머니는 2012년 한국발레협회대상을 각각 수상한 바 있다. 특히 엄재용의 어머니는 발레 무용수 출신이다.

엄재용은 “어머니는 선생님 같지만 선생님이 아닌, 어머니 같지만 어머니가 아닌 분이다. 주변에서 어머니가 발레에 많은 도움을 줬냐고 묻는데 그런 건 절대 안 하셨다. 내가 다른 선생님께 배워서 전적으로 알아서 하길 바라셨다. 든든한 지원자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도 두 사람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황혜민은 문 단장이 무용수 은퇴 후 가장 많이 지도했고, 마지막으로 키웠던 무용수이기도 하다. 엄재용은 데뷔 무대에서 무용수 시절 문 단장과 파트너로 공연했다.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문 단장은 “발레는 성인이 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아주 어릴 때 6, 7세부터 배우기 때문에 발레 무용수에게는 단순히 직업을 넘어서는 삶 그 자체 혹은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면서 “그래서 무용수는 (은퇴 포함) 두 번 죽는다란 말이 있는데 두 번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재용, 황혜민의 은퇴를 보니 내 은퇴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릴 것 같다. 두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아쉬워했다.

무용수로서의 은퇴는 새로운 출발이기도 한 만큼 두 사람의 향후 일정이 궁금했다. 은퇴 후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황혜민은 “30년 동안 같은 머리였다. 작품 때문에 머리카락을 땋기도 하고 풀기도 하느라 한 번도 짧게 못 잘랐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건데 마지막 공연 후에는 짧게 자르고 안 해 본 색으로 염색이나 탈색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엄재용은 “맛집을 엄청 좋아한다. 혼자서 배낭여행도 하고 싶다.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쭉 올라오면서 여러 고장의 맛집을 혼자 탐방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팬들에게 “평생 저희를 기억해주길 바라기보다 어떤 공연을 보다가 ‘저 공연은 엄재용, 황혜민이 잘했었는데’라고 생각날 정도로만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감동을 주는 무용수로 남고 싶다”고 인사를 전했다.

한편, 황혜민·엄재용 부부는 오는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드라마 발레 ‘오네긴’으로 마지막 고별 무대를 진행한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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