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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의 酒食雜記] 인간 바이러스

박종권 칼럼니스트입력 : 2017-10-11 20:00수정 : 2017-10-11 20:00
[박종권의 酒食雜記]

 

      [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인간 바이러스

할리우드 영화감독 ‘워쇼스키 자매’는 원래 ‘워쇼스키 형제’였다. 래리와 앤디. 그런데 동생 앤디가 성전환하면서 이름을 릴리로 바꿨다. ‘워쇼스키 남매’가 된 것이다. 그런데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를 촬영하던 중 형 래리도 성전환하면서 라나와 릴리 자매가 됐다.
이들이 남매였던 시절 대표작인 매트릭스의 한 장면. 프로그램 요원 스미스가 인간 반란군 지도자 모피어스를 심문한다. 시온(Zion)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서 시온은 유대인들이 바빌론 강가에서 눈물 흘리며 기억하던 곳이자, 영화적으로는 인간성의 본연쯤이다.
인간(혹은 인간성)을 지키려 모진 고문에도 버티는 모피어스에게 스미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은 아니야.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원을 소모해버리지. 그리곤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거야. 지구에 똑 같은 방식의 유기체가 하나 더 있어. 바로 바이러스야.”
그는 인간이 주변과 조화하지 않고 지구 자원을 마지막까지 소비하고는 떠나버리는 ‘바이러스’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는 질병이자, 지구의 암(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조화가 아니라 파괴, 상생이 아니라 공멸로 치닫는 속성이란 말인가. 불편하지만 한편으론 폐부를 찌르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본디 바이러스는 인간이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번식과 진화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가 ‘바이러스적(的)’인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는 점이 아이로니컬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를 통해 인간 역사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 ‘세균’들을 짚는다.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스텍 문명을 초토화시킨 건 총과 칼이 아니라 ‘천연두’ 바이러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쿠바에서 천연두에 감염된 단 한 명의 노예가 1520년 멕시코에 상륙하면서 2000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1618년에는 160만명으로 급감한다. 피사로가 단 168명으로 잉카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1531년에 페루에 상륙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천연두가 스페인의 총과 칼에 앞서 잉카인을 몰살시킨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아메리카 인디언은 겨우 한두 세기 만에 95%가 멸절돼 사라졌다. 히스파니올라 섬의 인디언 인구는 1492년 약 800만명이었지만,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535년에는 0명이 됐다. 유럽의 신대륙 정복은 그들의 전략이나 전술, 총과 칼의 힘이 아니라 더러운 병원균 덕분이었던 것이다.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 0.1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바이러스도 스스로 증식하고 진화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생명체이다. 다이아몬드의 말을 빌리면, 매독이야말로 가장 잘 진화한 바이러스이다. 수간(獸姦)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독은 처음엔 성기뿐만 아니라 머리에서 무릎까지 농양과 포진이 퍼졌고, 얼굴에서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으며, 환자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렇게 숙주가 죽어버리면 기생 방식으로 살아가는 매독 바이러스도 증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기가 헐어버리는 정도의 완화된 증상으로, 매독으로선 탐욕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효율적으로 후손을 퍼뜨리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타협할 줄 아는, 그래서 살아남은 ‘이기적 유전자’인 셈이다.
요원 스미스가 말한 ‘인간 바이러스’는 어떤가. 한때 번성했던 도시들은 주변 자연자원을 끝까지 소비함으로써 황폐화의 길을 걷고, 스스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주거와 연료를 위해 나무를 베면서 토양침식이 심화하고, 인구가 적정선을 넘어서면서 지하수가 고갈됐다. 황폐해진 도시는 그냥 버려둔 채 인간은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난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그런데 더는 떠날 곳이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매독의 지혜라도 빌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거대한 숙주인 지구가 죽으면, 인간 바이러스도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지구가 견딜 수 있을 정도만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지속 가능한 개발’이다.
바이러스의 속성이 조화와 상생이 아니라 파괴와 공멸이라고 하지만, 매독도 타협하는데 인간은 좀 더 나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인간 바이러스가 숙주뿐만 아니라 상잔(相殘)도 서슴지 않는 종(種)이란 점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빨라지는 지구온난화와 끊이지 않는 전쟁이 그 방증이다. 브레이크 없는 탐욕은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지구를 병들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절멸로 이끈다. 끼리끼리 살육전을 벌이면서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도 탈(脫)원전 논란, 여기에 ‘폭풍 전의 고요’ 상태가 아닌가. 원전을 둘러싼 논란도 ‘지속 가능성’이 아니라 눈앞의 이익을 내세운다. 파괴적 재앙에 눈을 감은, 실제적 손익을 외면한 탐욕만 번들거린다.
‘핵에는 핵’이란 주장도 거세다. 조화와 상생 대신 파괴와 공멸로 치닫는 상황이다. 원시 바이러스와 무엇이 다른가. 과연 이를 퇴치할 백신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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