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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나태

배철현 서울대교수(종교학)입력 : 2017-09-17 20:00수정 : 2017-09-18 09:32
배철현의 아침묵상16 -나태懶怠
 

[사진=배철현 서울대교수(종교학)]


하루
매일 아침 태양은 우리에게 한번 지나가면 받을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을 준다. ‘하루’라는 시간(時間)이다. 나는 이 하루를 통해 어제라는 과거를 극복하고 내일이라는 미래를 준비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오늘의 임무에 몰입할 것이다. 지난 일주일을 가만히 되돌아 평가해보면, 나는 어떤 점수를 줄 수 있을까? 내가 점수를 주저한다면,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주일을 가치가 있는 어떤 것으로 여기지 않았거나, 혹은 그 기간을 평가할 나만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 기간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만일 내가 내게 주어진 시간조차 장악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요구나 기대에 맞추어 평가한다면, 나의 인생은 이미 실패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기도 하고 형편없게 만들기도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타임’(time)은 ‘어떤 목표를 위해 섬세하게 나눈 것’이란 의미다. 유대인들은 신이 빅뱅의 순간에 ‘처음’이란 시간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창세기’는 ‘처음에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라고 기록했다. 인류는 문자를 만들고 도시를 건축하면서, 문명을 구축해왔다. 인류문명은 장소 정복에 관한 이야기다. 20세기에 들어 인류는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달을 탐사하였고 화성탐사를 기획하고 있다. 인간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장소’를 정복하는 일에 몰두한다. 우리는 대개 이 장소에서 안주한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집, 안정된 수익을 가져다주는 직장, 편안한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자동차, 언제든지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과 연결할 수 있는 핸드폰, 나의 현실을 잊게 해주는 TV. 그러나 이 장소를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이다.
자신의 삶을 깊이 응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장소’에 매몰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의 과거의 습관대로, 육체의 욕망대로 찾아가는 ‘장소’를 채워주는 무료쿠폰처럼 생각한다. ‘위대한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 수련하는 자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혁신한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자리가 있듯이, ‘하루’라는 시간도 그 순간마다 우리에게 고유한 행위를 요구한다.

퀘렌시아와 여유
우리는 시간을 두 가지 방식으로 대한다. 하나는 ‘여유’(餘裕)다. 여유는 자신에게 감동적인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다. 일상생활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다보면, 정작 내가 완수해야 하는 일을 완수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우연히 마주친 사건들에 무의식으로 반응하다 시간을 허비한다.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바닷속 깊이 숨겨져 있는 진주와 같다. 바다 표면에 출렁이는 파도를 잠재우지 않으면, 그 진주를 볼 수 없다. 여유는 일상의 번잡스러움을 잠잠하게 하는 ‘의도적인 빈둥거림’이다. 나는 여유를 통해,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에 한없이 몰입할 수 있다.
이 여유는 마치 투우장에 나서기 전 투우가 쉬는 공간인 ‘퀘렌시아’(querencia)와 같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투우를 통해 공포와 패기를 찬양했던 ‘오후의 죽음’이란 책에서 나오는 용어다. 헤밍웨이는 말한다. “퀘렌시아는 황소가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고 싶은 장소, 원모양의 공간이다. 이곳은 황소가 투우 과정에서 자연히 만들어지는 장소다. 퀘렌시아는 당장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싸움이 진행되면서 황소의 머리에 자연히 생기는 장소다. 이곳에서 황소는 자신의 등을 기댈 수 있다. 황소는 자신의 퀘렌시아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게 위험하고 도저히 살해할 수 없는 괴물이 된다.” ‘퀘렌시아’의 어원이 심연에 숨겨진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찾아 나서다; 추구하다’라는 단어 ‘퀘스트’(quest)와 같은 어원이다. 여유는 자신만의 퀘렌시아다.
19세기 미국정신을 정의하고 제시한 시인 월트 휘트먼은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Song of Myself)란 시의 첫 편 후반부에 퀘렌시아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빈둥빈둥거리고 내 영혼을 초대합니다. 나는 (땅 바닥에) 몸을 기대 빈둥거리며, 여름 풀잎을 관찰합니다.” 휘트먼은 빈둥거리며 ‘자기 자신’이라는 자신의 승화된 영혼을 갈망하고, 마당에 피어난 여름 풀잎에서도 신비와 경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유는 자신에게 몰입하여 멋진 자신을 발현시키는 과정이다.
시간을 보내는 다른 방식은 ‘나태’(懶怠)다. ‘나태’는 자신에게 고유한 임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다. 아니, 그 존재를 알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태는 소극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없어 게으름을 피우거나, 과거의 나쁜 습관에 젖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삶의 태도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르는 상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자신만의 ‘치명적인 결함’을 지키고 있다. 자신을 파괴하고 나서야 그것을 알게 되는 그런 기질이자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결함을 ‘시학’에서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불렀다. ‘하마르티아’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궁수가 활을 당겨 날아간 화살이 과녁을 비껴나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화살이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다. 그 길을 통해 과녁에 명중할 수 있다. 그러나 궁수가 나태하여 정신차리지 않고 시위를 놓친다면, 그 화살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림=이중섭작, 1953년경]


그는 자신이 가야 할 미래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이란, 남을 훔쳐보고 부러워하거나 흉내내는 일이다. 그는 남들이 하는 행위에 탐닉하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그의 관심은 자신이 아니라, 남들이 평가하는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남들의 평가가 궁금하여 수없이 자신의 SNS를 뒤진다. 남들의 평가가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하루를 지낸다.

일과
나에게 주어진 하루 중에 내 미래를 실천하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가 있다. 바로 ‘일과’(日課)다. ‘일과’는 자신에게 감동적인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 오늘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수련과정이다. 나는 일과를 ‘타임’(time)의 어원처럼, 하루 24시간을 촘촘하게 나누어 해야 할 일을 정한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것처럼, 새벽, 아침, 오전, 오후, 그리고 밤에 완수해야 할 일이 있다.
일과는 목표를 향해 내가 오늘 가야 할 거리와 같다. 일과는 과거 농경사회에서 농부가 하루 동안 밭에 나가 완수해야 할 일(果)을 자신에게 다짐하는 약속(言)이다. 농부가 매일매일 완결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소출을 가을에 추수할 수 없을 것이다. ‘일과’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루틴’(routine)은 그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루틴’은 ‘자신이 하루 동안 가야 할 거리 혹은 길’을 의미하는 ‘루트’route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졌다. 42.195㎞를 뛰는 마라톤 선수는 매 ㎞마다 자신이 따라야 할 정교한 지침이 있다. 그는 그 지침을 준수함으로써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 일과는 우리가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리면서, 우리가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지침이다. 내가 일과에 충성하면, 일과는 나에게 매일 매일 더 숭고한 목적지를 제시하고 구간을 이전보다도 효율적으로 지낼 수 있는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근육을 선물한다.
내가 일과를 짜고 그것을 지키는 행위는 ‘거룩’하다. ‘거룩’이란 자신이 스스로 구별하여 지킬 때, 그 시간이 나에게 주는 아우라다. ‘거룩’이란 장소에 깃드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구별된 시간을 종교적으로 지킬 때, 그 시간이 선사하는 신의 선물이다. 일과가 정해져 있는 하루 24시간은 우주빅뱅의 순간과 인류종말의 순간이 하나가 되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다. 일과를 장악한다는 말은 시간을 정복하고 ‘승화된 나’를 오늘 이 시간에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만의 일과가 있습니까? 아니면 나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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