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로칼럼] ‘스튜어드십 코드’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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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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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로칼럼

[사진=윤용로]


초빙논설위원 · 전 외환은행장
‘스튜어드십 코드’가 다가오고 있다

2015년 2월 13일 미국의 헤지펀드 서드 포인트는 일본의 세계적인 산업용 로봇기업 파낙의 주식을 취득했다. 서드 포인트는 파낙에 대해 1조 엔이 넘는 내부유보자금의 적극적인 활용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였으나 파낙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마침 그 해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을 방문하여 일본 경제의 진전 상황을 설명하는 계획이 잡혀 있었다. 이에 따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도모하는 아베노믹스의 전반적인 흐름은 파낙에 대해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결국 파낙은 아베 총리가 방미 중이던 4월 27일 배당성향을 30%에서 60%로 대폭 상향조정하고 향후 5년간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통해 최대 이익의 80%를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아울러 주주들과의 대화창구로서 주주관계(Shareholder Relations) 전담부서를 신설하였다. 이 사건은 전통적인 ‘주식회사 일본’의 주주대응방식에 일대 변화를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2016년에는 대표적인 편의점 체인 세븐 일레븐의 지주회사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에서도 경영승계와 관련한 주주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2015년 6월 4일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파낙 사례를 ‘주주 행동주의자 아베 신조를 만나다’라는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해외에 단 한 개의 공장도 갖고 있지 않고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경영을 해 온 파낙의 지배구조를 아베의 리더십에 의해 바꾸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베는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 상장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늘 낮은 상태에 머문 것은 낙후된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때문이라고 보고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강화를 강조해 왔다. 특히 2014년 2월 도입된 기관투자가의 행동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아베노믹스의 대표적 실행수단으로서 보수적인 일본 자본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럼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개선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상장기업의 경영진과 이사회는 주주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경영을 대신하는 수탁자이다. 따라서 회사와 관련된 정보를 시의 적절하게 공개하고 투명성을 보장하면서 기업의 자본생산성과 이익을 증대시켜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이 적정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지배구조 개선의 목적이다.
우리나라에 기업지배구조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소개된 것은 외환위기 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로 시작되었지만 2002년 주관기관으로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설립되었고 모범규준 공표 등 다양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는 금융회사에 대해 보다 강화된 내용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는 아직도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6년 프랑스의 투자은행 크레디리요네(CLSA)가 발표한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점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에도 뒤진 12위에 머물고 있다. 1위인 호주와 2위인 일본과의 점수 차도 아주 큰 편이다.
우리나라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작년 12월에 제정되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경영자들이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해당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로서 감시할 사항들을 권고하는 모범규준이다.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행사 뿐만 아니라 경영진과의 대화, 주주제안에 의한 이사후보추천 등의 보다 능동적인 활동도 해당된다. 한마디로 경영에 대한 관여(engagement)와 의결권 행사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함으로써 기업 활동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관여하는 것이다.
주주의 관여에 의해 회사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전략, 그리고 장기 가치 창출에 대한 주주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으며 투자자로서도 이사회와 경영진들의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한 기관은 사모펀드운영사 등 세 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대의 큰 손인 국민연금이 채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자산운용사들을 포함한 많은 금융회사들이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업지배구조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지켜야할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고,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밖에서 감시하고 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저금리와 세계시장 상황 등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요즘 코스피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우리 자본시장에 늘 따라다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불명예가 조금은 벗겨진 느낌이다. 이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과 경쟁력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국민의 돈(국민연금)을 이용해 상장기업의 경영에 간여하려한다는 의구심 등으로 국민연금이 주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산된 주주구성 등으로 주주의 이익이 경영에 충분히 반영될 기회를 감소시키는 일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적절한 관여와 의결권행사가 활발해져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더 높아져야 ‘코리아 프리미엄’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시행 초기에는 우리만의 기업적 특성과 자본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시행착오의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미 삼성물산, KT&G와 SK에 대한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공격적 관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스스로 방어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상장기업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안정을 위한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에서 그야말로 ‘신뢰 받을 수 있는 위협(credible threat)’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막중한 책무를 띤 ‘스튜어드십 코드’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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