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기업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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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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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

도깨비 방망이는 옛날이야기나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우리 정치권에도 도깨비 방망이가 하나 있다. 바로 기업 때리기다. 때리면 경제민주화도, 일자리도 뚝딱 나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국회가 2월 임시회에서 경제민주화에 꼭 필요하다며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킬 기세다.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고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등을 의무화하고 다중대표소송도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한 가지 기업경영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없다. 모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뿐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보자. 기본적으로 회사의 감독기능을 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의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자 한다. 과연 외부 인사는 모두 건강하고 올바른가? 기업을 투명하게 만든다는 그럴듯한 명분하에 돈만 노리는 해외 투기자본이 그들 중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대주주의 영향력은 철저히 배제하고 투기성 외국자본의 영향력은 배제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경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소액주주들의 이사회 참여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도 제기능을 할지 의문이다. 대주주 지분율이 30%인 경우 3명의 이사선임시 소액주주측이 집중투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11%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소액주주 또는 이들의 연합이 11%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다. 결국 이 또한 거대 투기성 외국자본의 악용가능성만 높여줄 뿐이다.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멀다.

대표소송도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이 소송의 발상지인 미국의 경우 몇몇 행동주의 기관투자자들과 변호사들이 거액의 합의금을 노린 위협소송이 많다고 한다. 다중대표소송이 꼭 필요하다면, 모회사가 자회사의 주식을 100% 보유하여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한하여야 한다.

전자투표제도도 의무화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섀도우보팅 폐지에 따른 현실적 문제 해결과 연계해야 한다. 지난 2014년 아무런 대책 없이 섀도우보팅을 폐지하려다가 주주총회 불성립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예견되자 그 폐지를 3년간 유예한 경험이 있다. 주주총회가 열리지 못해 관리종목 지정이나 상장이 폐지되면, 그 피해는 경제민주화 혜택을 받아야 할 소액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키베르난(kybernan)은 배를 조종하는 키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여기에서 지배구조로 번역되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나왔다. 어원에 비춰보면 지배구조의 본질은 투명성과 개방성보다는 유능함과 효율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거센 파도와 풍랑 속에서도 배가 침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 기업은 4차 산업혁명 앞에 외롭게 서 있다. 천둥번개가 치고 파도가 높다. 초강대국 미국까지 자국 회사를 위해 뛰고 있는 마당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규제정책을 왜 이렇게 서둘러 통과시키려고 하는가? 정치적 계산과 맞지 않더라도 경제민주화와 기업 현실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개정안에 대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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