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의 아트人> 야생적 붓질 기운생동.. '설악산 화가' 김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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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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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 29일부터 50년대~설악산시리즈까지 작품 70여점 선봬

 
김종학, 숲, Wood, 1985, 캔버스에 아크릴, 132×330cm, 개인 소장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그가 꽃 그림을 처음 들고 나왔을때 추상화를 하는 친구들이 말했다.  "타락했다".

추상화를 하던 그가 구상화, 그것도 '꽃 그림'을 그려내자 시선은 차가웠다. '이발소 그림'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 "이것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숙명"이라고 여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속에서 살며 그리고 싶은대로 그리고, 마음대로 그리고 또 그렸다.

그렇게 30년. 그는 미술시장의 블루칩작가로 떠올랐다. 2007년 미술시장 호황기때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거품꺼진 올해 경매시장에서 아직도 억대에 낙찰되고 있다.

최근 그의 작품은 또한번 주목을 받았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차한성 대법관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의 작품 소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설악산 화가' 김종학 화백(75)이다. 김화백의 50여년의 화업을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9일부터 열린다.

'설악산 화가' 김종학화백이 자신의 호박꽃 그림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photo by king

그동안 상업화랑에서만 전시해오던 그는  28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감개무량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정부 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은 '김종학 회화'로써의 재평가는 물론, 우리시대 대표적 작가로 공식인정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설악에서 읽은 자연, 그가 현장에서 그려낸 작품은 그야말로 '폭풍 색채', '색채의 종결자'다.

울긋불긋 화려한 색감과 대범한 붓질은 야생적이다. 뒤범벅된 색채와 꽃무리로 가득 채운 화면은 폭발할 듯 에너지가 넘친다.

꽃, 풀, 새 나비등이 초록의 거대한 화면에 꿈틀거린다. 500호 1000호 크기의 대작들앞에 서면 초현실주의 그림체를 보는듯한 환상에 빠진다.

"한달에 20일은 설악에서, 10일은 서울에서 지내며 30여년간 대부분 설악에서 칩거하며 그림만 그렸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산과 같이 지내며 봄에는 봄, 여름에는 여름, 가을에는 가을, 겨울에는 겨울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늘 봄은 새로워요."

그가 설악으로 들어간건 1979년. 추상화를 하던 그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족도 떠나고 싶었고 화단으로부터도 떠나고 싶었다. 정말 고독하고 싶어 설악산에 들어왔지만 죽고 싶을만큼 쓸쓸했다.
텅빈 집에서 밤바다 별을 쳐다보고, 달을 쳐다보면서 "백장의 좋은 그림 남기고 죽자"고 다짐했다. 낮에는 80만평이나 되는 넓은 들판을 헤매다니며 꽃과 나비를 봤다.

"설악산에 봄이되니 야생화가 피기 시작하더라고요. 할미꽃 피는 광경을 보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이전엔 그런것들을 거들떠보지않았는데 드넓은 들판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있자니 그리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였어요."

설악은 김종학의 인생에 대한 절망감과 그림의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한꺼번에 해소해 주었다.

꽃이면 꽃, 나무면 나무 산이면 산등 형형색색의 특징을 찾아냈다. '단순한 형태감'. 그의 꽃은 사실적으로 피는 꽃이 아니라 화면위에서 다시 구조적으로 피어난 꽃이다. 구상화로 변했지만 추상화로 시작했던 그의 손맛은 추상과 구상을 버무린 '김종학표 구상화'를 탄생시켰다.

김종학, 설악의 여름, Mt. Seorak in Summer, 1998, 캔버스에 아크릴, 220×250cm


"내 그림의 기법은 서양화이지만 동양화를 그리는 셈입니다. 들과 산을 쏘다니며 사생한 것으로 토대로 일일이 꽃을 그리고 있으니 기운생동이 약해지더군요. 그래서 꽃을 한참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머리에 집어넣었다가 그 다음에 물감을 바로 짜내 화폭만 바라보고 쏟아냅니다. 빨리 그려야 작품이 좋지, 너무 많이 생각하고 천천히 그린 그림은 잘 안되더군요."

김종학. 역사.목판화.1966 / 제5회 동경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장려상을 받은작품이다.
즉흥적 직관에 의지한 빠른 붓질과 색감이 내뿜는 기운생동한 작품은 '붓은 뼈의 연장'임을 실감케한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호방한 작업세계를 한눈에 파악할수 있는 300호~1000호크기등 대작들이 대거 출품돼 눈길을 끈다.

"대작을 그려야만 만족하는 체질이지요. 이제껏 3000점을 그렸어요. 요즘 경향은 큰 작품을 선호하던데 1000호크기 작품을 보면, 나도 좀더 큰 걸 그렸어야 하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체력만 따라준다면 계속 큰 작품을 할 겁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순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나약하고 여성적인 꽃이지만 김종학이 붓을 휘두르면 울긋불긋한 꽃으로 뒤덮인 만화방석도 선이 굵은 남성적 풍경으로 변모한다"며 "남성적 호쾌함이 넘치는 김종학전은 삭막한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자연의 치유력을 발휘하는 한편, 새로움의 충격이라는 말초적 자극에 중독되어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미술의 회화 본연의 힘을 제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학화백은 서울대미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미술대와 미국뉴욕 프랫대에서 수학했다.
 이번 전시는 1950년대 후반 과도기적 실험작부터 설악산 시대가 시작되는 1970년대 말 이후 최근까지 대표작 70여점이 선보인다.  또 큰 딸과 아들에게 쓴 꽃그림 편지도 소개된다.

전시 기간동안 도슨트와 함께하는 전시설명회가 매일 2~3회 열리고 김종학과 그의 오랜 친구들(김봉태 김형국 송영방 윤명로)이 함께 하는 좌담회(4월 15일)도 열린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 관람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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