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스스로 학습하는 AI"의 거짓말 …밀실에 갇힌 디지털 노동자 권리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인공지능(AI)이 혁신적 기술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운데 모두들 AI 시대에 적응하려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각국 정부에서는 AI를 미래 국가경쟁력의 핵심 자산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 역시 AI 주도권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 기회에 기업의 명운을 바꿔보려 힘을 쓰고 있다. 이는 취업 구멍 뚫기 등 개인 차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전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데이터에 관한 비화다. AI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근본을 이루고 있는 건 바로 데이터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데이터 역시 원유처럼 인간의 해석과 정제 과정을 거쳐야만 경제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AI에 대한 여러 기대감 속에서도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바로 AI의 먹이를 준비하는 이들이다. AI가 학습하고 작동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가공하며 AI의 오류 위험성을 걸러내는 데이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보통 하루 종일 쉬지 않고 3교대 방식으로 일한다. AI 미래를 떠받치고 있는 인간의 노동은 무려 지난 10년간 밀실에서 은밀히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AI는 마치 스스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노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점을 이제는 밝힐 때가 왔다고 본다.

오늘날의 AI는 수많은 인간의 경험과 노동이 축적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AI 시대 집약적 과실을 여러 사람들이 누리고 있으나 그 여정에서 아무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부류의 회색지대 사람들이 있다. 도로 사진 속 자동차와 보행자를 구분하고 의료 영상에서 이상 징후를 표시하며 위성사진에서 산불 위험 지역을 식별하는 작업은 모두 노동자 몫이다. AI는 수백만 장의 사진에 대해 누군가 정답을 표시해 주어야 학습할 수 있다. 사진 속 고양이와 강아지의 차이를 AI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다. 단순한 이미지 분류를 넘어 인간의 선호도와 가치판단까지 AI가 모두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정교한 개입이 필수적이다. 어떤 답변이 적절한지 어떤 표현이 위험한지 어떤 정보가 신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과정 역시 결국 사람의 판단에 의존한다. AI 답변 품질은 철저히 데이터를 다루는 인간의 지식과 판단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AI가 불러일으킬 노동의 향후 변화에 이견이 많지만 AI가 발전할수록 결국 인간 노동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 노동은 주로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데이터 레이블링 업체의 임금 미지급 사태는 이러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쿠키뉴스 2026년 9월 4일자). 피해자 상당수는 장애인, 경력단절 여성, 장기 실직자, 고령자, 돌봄 노동자 등 일반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층이었다. 이들에겐 출퇴근 부담 없이 집에서 수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제활동 수단이 데이터에 딱지 붙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기반의 계약 구조 속에서 이들은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외곽지대에 방치돼 있던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했고 그런 문제 발생 이후에도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AI 산업의 가장 아랫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기술 발전의 과실은 누리지 못한 채 위험만 떠안고 있는 현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첨단기술 산업의 화려한 외관 아래 취약계층의 불안정 노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이제는 AI 시대에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냉정하게 물어봐야 할 때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AI 산업이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끈질기게 제기되어 왔다. 오픈AI의 초기 AI 안전성 학습 과정과 관련하여 케냐 노동자들이 유해 콘텐츠 분류 업무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국제 언론에 널리 소개된 것은 벌써 오래전 일이다(타임 2023년 1월 18일자). 이 시사주간지는 챗GPT의 초기 학습 안정성 확보 과정에서 케냐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폭력·성범죄·아동학대 등 극단적 유해 콘텐츠를 분류하는 작업에 열악한 작업 환경과 처우 속에서 동원된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AI산업의 윤리적 책임 문제를 제기했다. 이보다 앞서 MIT 테크놀로지 리뷰(2022년 4월 20일자) 역시 AI 기술이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보이지 않는 손에 거의 의존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AI 공급망, 데이터 노동, 글로벌 사우스의 AI 노동 문제를 다룬 이 보도는 AI 혁명을 글로벌 노동 분업과 디지털 불평등의 관점에서 조명해보게 하는 대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다. 필리핀에서도 또한 중남미에서도 콘텐츠 검열 노동자들이 유사한 문제를 오랫동안 경험해 왔다(워싱턴포스트 2023년 8월 28일자). 그런데 이제는 한국도 예외 지대가 아니었다. 소셜미디어와 AI 산업이 성장할수록 그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노동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AI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데이터 노동자들의 개입과 정신적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겨서는 아니 된다. 노동자들은 인간이 보통 접하기 힘든 매우 충격적인 자료를 검토하는 업무를 사각지대에서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AI의 뒤편에서 끊임없이 정답을 제공해주는 주체도 사람이고 또 잘못된 답변을 수정하며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준을 설정해주는 역할도 온전히 사람 몫인 것이다. 결국 AI는 인간 노동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시킨 결과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AI가 인간을 화면 뒤편으로 숨겨버리고 만 꼴이다. AI에 대한 환상을 달리 표현할 길도 있지만 이렇듯 우리가 눈속임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노동을 보이지 않는 유령 노동으로 부른다. 그런 노동은 AI가 위험한 콘텐츠를 생성하지 않도록 훈련시키는 데는 유용했겠으나 노동자 모두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기술혁명은 발전과 함께 새로운 노동 문제를 동반해 왔다. AI 시대 역시 결코 예외가 아니다. AI 산업이 국경을 초월하여 발전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혜택은 결코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가 인간 없이는 데이터란 먹이를 스스로 구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AI를 자동화된 완전체 기술로 인식하는 경향이 사람들 생각 속에 짙게 깔려 있다. 마치 기계가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보편화됐다. 이런 사고방식은 큰 문제를 야기한다. 사용자는 불과 수초 만에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받아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데이터를 정제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품질을 관리하는 과정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편리함이 커질수록 노동은 더욱 감춰지고 멀어지는 까닭이다. 노동 형태가 과거보다 더 분산되고 비가시화되면서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제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는 데이터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AI 산업 발전을 위한 건전성 필수 조건으로 인식해야 할 때가 왔다. 어떤 유용한 기술이든 기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과정 실제 참여자, 특히 노동자에 대한 공정성을 보장할 때 비로소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발전하는 것이다. AI의 사회적 책임을 논할 때 탄소배출이나 개인정보 보호 같은 사회적 비용만 거론하는 현 수준을 넘어 데이터 노동자 처우 관점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야만 공정한 것이다. AI 혁명의 성공 여부도 그 뒤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 여부에 의해 평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를 학습시키는 노동자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제는 분명히 답을 해야 한다. 데이터 노동의 가치와 기여는 어떤 방식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인지, 정신적 피해를 수반하는 콘텐츠 분류 노동에 대해서는 어떤 보호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중하게 다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답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AI가 기술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하기 어려우며 결국 AI는 인간사회에서 배척당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AI 산업이 더욱 성장할수록 데이터 노동자의 규모 역시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다. AI가 진정 인간을 위한 도구라면 AI를 만드는 노동자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AI 윤리 헌장에 담는 것이 합당한 일일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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