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자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의 최신 AI 최상위 모델인 클로드 2종(페이블5, 미토스5)에 대한 해외 접속을 상당 기간 (2026년 6월 12일부터 30일까지) 전면 해외접속 차단했다(로이터 2026년 6월 13일자). 미국 정부의 자국 안보 및 수출 통제 관점에서 촉발된 외부 접속 전면 차단 행정명령이 내려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세계 각국의 기업이 사용하던 AI 서비스는 일제히 멈춰 섰다. AI를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금융기관 의료기관 제조업체에 이르는 산업 전체 영역에 예상치 못한 혼란이 야기됐다. 그동안 AI는 아무때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처럼 여겨졌지만 이번 사태는 그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단숨에 드러냈다. 국가안보라는 명분 앞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서비스조차 하루아침에 차단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IT 산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각성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가장 큰 교훈은 AI가 단순한 민간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인터넷처럼 국가 기반 핵심시설들을 구동시키는 새로운 사회 운영체계로서 AI를 인식하게 해 준 결정타가 됐다. 냉전 시대에는 핵무기가 그런 역할을 했지만 이를 계기로 AI가 디지털 핵무기란 말까지 프랑스 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나왔다(르몽드 2026년 7월 1일자). AI를 통제당하는 국가는 AI 원천 기술 보유국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입증해줬다. 핵무기는 하드웨어지만 AI는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가 국가핵심 자산으로서 핵무기 보유만큼 중요한 뜻도 담겨있다.
소위 소버린 AI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너무나도 허약한 존재다. 그것은 데이터 주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데이터를 구동하는 하부구조를 완전히 도외시하는 까닭이다. AI도 소프트웨어다. 사실 소프트웨어에 정치권에서나 사용 가능할 소버린이란 말이 붙은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에 가깝다. 즉 정부와 기업이 독자적인 거대 언어모델을 개발하고 자체 데이터센터와 GPU 인프라를 확충하는 정도만으로는 어림없다는 뜻이다. AI란 거대한 소프트웨어 종합 기술 생태계의 꼭지점 맨 마지막 산출물이다. 가장 밑단에는 하드웨어 반도체가 있고 그 위에서 운영체계(OS)가 그 반도체 하드웨어를 제어한다. 운영체계 바로 윗단에는 데이터베이스엔진(DB)이 자리 잡고 있어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한다. 그리고 그 윗단에 우리가 사용하는 생성형 AI 모델이 비로소 구동된다. 다시 말해 AI는 거대한 기술 스택의 최상위 첨탑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을 자체 개발해 놓았을지라도 그 아래를 떠받치는 OS와 DB 그리고 더 나아가서 클라우드까지 포함하여 그 어느 하나라도 다른 나라 기술에 의존한다면 진정한 국가 자체 AI 기술을 확보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미국의 18일간 AI 셧다운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나라들이 우리도 자체 AI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AI 모델 자체 개발력이 전부가 아니다. 거기까지만 보인다면 컴맹급 근시안적 견해다. AI 모델을 움직이는 기반 기술까지 우리 손에 있는가를 따져 보기 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즉 OS, DB, 클라우드가 모두 해외 기업의 기술과 정책에 종속되어 있다면 국가의 디지털 주권은 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면 건물의 설계도는 우리 것이라도 토지와 전기 수도 출입구 열쇠를 모두 남이 쥐고 있는 상황을 연상해보라.그렇듯 주권이 맨 위가 아니라 가장 아랫단에서 시작되는 건 만고불변의 이치다.
중국 역시 미국의 경제적 견제가 기술 봉쇄로 이어지자 하모니OS라는 자체 OS를 개발했으며 오션베이스라는 중국 국산 DB까지 개발해놨다. AI 모델만 국산이라고 해서 기술 주권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중국은 알고 지난 10여년간에 걸쳐 집요하게 대처한 결과다. 딥시크 같은 것 하나 가지려는 자세로 따라 하려고 들면 큰 오산이다. 하지만 어느 다른 나라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고 초고속 통신망을 갖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AI가 돌아가는 핵심 소프트웨어 계층에서는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 철저히 100% 해외 기술에 의존한다. 이에 관련된 매우 부끄러운 수치 하나가 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글로벌 점유율이 단 0.8%다. 1%도 채 안된다. 이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넘어가는 게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도 AI 셧다운으로부터 배우는 게 하나도 없단 뜻이 된다.
평상시에는 이러한 구조가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들여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게 AI 3대 강국이란 구호의 실체였고 현재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전쟁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거나 국가 간 기술 갈등이 심화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AI 사태는 이런 극심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의존 구조를 당연시 받아들여 왔다는 행태다. 무려 지난 30년간 고질병처럼 그래 왔다. AI 시대에는 이런 전근대적 사고방식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 AI 밑단의 핵심인 OS와 DB가 국가 전체의 디지털 안전망의 핵심 중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고는 국가를 매우 방만하게 경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물론 독자적인 운영체계와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자는 주장이 모든 것을 국산으로 대체하자는 폐쇄적 기술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디지털 산업은 글로벌 협력과 개방형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따라서 외국 기술을 배척하거나 세계 시장과 단절하자는 접근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기초 기반 기술 특히 하부 소프트웨어는 우리 것을 반드시 토종 기술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핵심 분야에서는 언제든 기술의 수직체계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대체 역량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하면서도 전략비축유를 상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산업정책도 마땅히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AI 강국 운운하는 구호뿐이었으나 예를 들면 운영체계 강국 식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고 민간 기업이 독자적으로 감당하기에도 부담이 크다. 그래서 중국처럼 국가가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보는 관점에서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간 기업이 이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설계될 수 있다. 뭐든지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15년 동안 정부 산업 대학(특히 카이스트를 통한 국가산업 고급인재 적시 공급) 3박자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듯이 말이다. 개도국들이 한강의 기적을 재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3박자 중 한둘이 어디선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미국 국방부처럼 이러한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산업정책은 국가의 디지털 생존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AI는 흔히 제4차 산업혁명의 엔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차대한 엔진은 따로 있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AI는 실은 트랜스미션이나 바퀴 정도에 머문다고 봐야 맞다. AI 거대 언어모델은 겉으로 눈에 잘 띄는 존재지만 그 아래 깊숙한 암실에서는 OS와 DB라는 기반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지 않으면 AI도 순식간에 사상누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중대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번 AI 셧다운은 국제 질서체계 개편의 서막을 알리는 심각한 경고장으로 봐야 한다. 이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한국형 챗GPT 하나를 잘 만드는 AI 강국 구호 경쟁이 아니다. 반도체에서 그로부터 수직상향으로 OS DB 더 나아가서 클라우드를 거쳐 종국에는 AI 모델 꼭대기에 이르는 컴퓨팅 스택 전체를 단계적으로 자립시키는 국가 전략이 절실하다. 다시 밝히지만 중국은 미국 견제 탓에 또한 그 덕에 지난 10여 년간 그리 해왔다. 모든 것을 단숨에 국산화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게 우리가 부품 기술 강국을 넘어 소프트웨어 주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현명한 길이다. 국가AI 기술 자립 전략에는 무엇보다 이게 핵심이다. 따라서 이런 기술 자립이 혹시라도 국가 균형 발전 같은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아 크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적 요소가 물론 시급하고 중요할지라도 기술 자립부터 완성하고 난 후에 시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기술이 뒤지면 모든 게 끝장이기 때문이다. 경기 끝나고 집에 갈 시간에 무슨 다른 전략 도모하려 든다면 때늦은 것이다. AI 시대의 독립은 AI 모델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OS와 DB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을 깨닫고 앤트로픽 차단을 계기로 누구보다도 국가가 먼저 정신 바짝 차리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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