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핵심 분야에서 세 자릿수 규모의 경력직 채용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에 걸쳐 인력 유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설계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은 물론 학계 연구 인력의 연쇄 이동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산업 생태계 공동화를 막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등에는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경력 채용을 키워드로 한 게시글이 전날 공고 발표 후 하루 만에 수십 건 이상 게재되며 조회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 직장인은 "매출 500억원대 팹리스의 7년차 책임급(40대 초반, 기본급 8500만원, SCI 논문 3편)인데 (삼성전자) 진입 가능하겠느냐"며 구체적인 이직 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회원 수 350만명의 네이버 대표 취업 카페 역시 서류 전형 전략과 직무별 우대 요건을 공유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쌓이는 중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오는 27일까지 HBM 개발 6개 직군을 포함한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와 반도체연구소 등 전 영역에 걸쳐 총 82개 직군의 경력 엔지니어 공개 채용에 돌입했다. 지난 2월에 이은 올해 두 번째 대규모 인재 수혈이다. 평택, 용인,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등 대규모 중장기 인프라 확충 계획과 맞물려 가용한 전문 인력을 최대한 선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소부장 업계 역시 인력 연쇄 이동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요 장비 업체 엔지니어가 대기업의 첨단 공정 및 소자 부서로 자리를 옮기면, 그 빈자리를 중소 소부장 업체 인력이 메우는 '일자리 에스컬레이션' 현상 때문이다. 최근 국내외 주요 장비 업체들이 앞다퉈 경력 모집에 나선 것도 삼성전자의 상반기 채용 시점에 맞춰 이탈한 핵심 인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학계의 걱정도 크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반도체 설계 전공 교수는 "지난달 학기 종료 직후 박사후연구원 한 명이 산업계로 자리를 옮겼다"며 "미래 불안감이 큰 연구실 특성상 남은 연구원들의 심리적 동요를 자극하고 기업행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해 인력 생태계의 공생 체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중소·중견기업 등 허리층 인적 구조가 무너질 경우 대기업도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상진 명지대 반도체공학부 교수는 "인재 확보 경쟁은 시장의 순리이지만 대기업 쏠림이 고착화하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자생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인프라 구축에 쏟는 노력만큼 인재 육성과 생태계 보호에도 정책적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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