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 상장을 통해 265억 달러를 조달하면서 외환시장에도 뜻밖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14일 대금 납입을 전후해 대규모 달러가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공모액의 7배가 넘는 글로벌 자금이 몰린 데다 상장 이후 해외 기관투자자의 추가 매수까지 이어진다면 SK하이닉스 ADR은 새로운 외화 유입 통로가 될 수 있다.
265억 달러는 결코 가볍게 볼 규모가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충격 당시 한국과 미국이 체결한 통화스와프 한도는 600억 달러였지만 실제 국내에 공급된 금액은 200억 달러에 못 미쳤다. 당시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만으로도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약 40원 떨어졌다. 이번 자금 유입이 시장에서 ‘통화스와프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최근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까지 더해진다면 단기적인 환율 안정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원화 강세 전환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섣부르다. 외환시장은 특정 기업의 대규모 자금 조달만으로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미국의 관세정책과 중동발 불안, 국제 유가, 한·미 금리 차, 국내 투자자의 해외 증권투자 등 환율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 들어오는 달러가 장기간 국내 시장에 머물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현지 메모리 생산 확대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조달한 자금을 미국 공장 건설과 장비 도입, 현지 운영비 등에 사용한다면 달러는 다시 해외로 빠져나간다. 실제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로 들어오는 총액이 아무리 커도 대미 투자로 재유출된다면 외환시장에 남는 순달러 공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단기 호재와 중장기 부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규모 달러가 일시에 들어오거나 빠져나갈 때 시장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기관, 주요 기업 간 정보 공유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외화 조달과 해외 투자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할 수 있는 상시 외환수급 점검 체계를 갖춰야 한다. 24시간 외환시장도 거래시간 확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장의 깊이를 키우고 외국 금융기관의 참여를 확대해 특정 거래에 환율이 크게 출렁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기업의 해외 투자를 무조건 막을 수도 없다. 미국 현지 생산은 관세 위험을 낮추고 핵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다만 국내 투자와 고용이 공동화되지 않도록 정책금융과 세제 지원은 국내 첨단 생산시설 확충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의 일정 부분이 국내 연구개발과 생산능력 확대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경상수지 흑자가 나더라도 해외 증권투자와 직접투자로 더 많은 달러가 빠져나가면 환율은 안정되기 어렵다. 수출을 늘리는 것만큼 벌어들인 외화가 국내 금융시장에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외환보유액 규모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외화자산과 부채, 만기 구조와 유동성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SK하이닉스의 나스닥 데뷔는 한국 기업이 세계 자본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동시에 한 기업의 달러 조달이 국가 환율을 움직일 만큼 우리 외환시장의 수급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환율 하락에 안도하는 일이 아니다. 달러가 들어올 때 외환 체력을 비축하고 빠져나갈 때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외환 관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체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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