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를 따진다. 누가 이겼고 누가 더 큰 군사적 성과를 거뒀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경제 관점에서 보면 전쟁의 진짜 의미는 전장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유조선과 항만, 그리고 공급망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합의하면서 세계 경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국제사회는 핵 협상과 제재 완화, 454조원 규모의 이란 재건기금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란의 석유 판매 재개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가능성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에너지의 대동맥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쿠웨이트, 카타르, 이란의 원유와 LNG가 이 길을 지나 세계 시장으로 향한다. 특히 한국 같은 자원 수입국에는 사실상 생명선과도 같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지만 에너지 자립도는 매우 낮다. 우리가 사용하는 원유 대부분은 중동에서 들어오며 상당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따라서 이 해협의 긴장은 곧바로 한국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란의 석유 판매 재개는 이런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국제시장에 추가 공급이 가능해지고 원유 수급의 불확실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제재로 묶여 있던 이란의 생산 능력이 시장에 복귀하면 유가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공급망 다변화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려왔지만 여전히 특정 지역 의존도가 높다. 공급망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강해진다. 이란 시장이 다시 열리면 한국은 단순히 원유를 더 사는 것이 아니라 공급처를 하나 더 확보하게 된다.
최근 한국 경제의 화두는 반도체와 AI다. 하지만 첨단 산업 역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반도체 공장도 결국 전력과 물류, 석유화학 제품 위에서 돌아간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첨단산업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이 공급망 안정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자국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고,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중국은 핵심 원자재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제 에너지는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됐다.
이번 종전 합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한국 경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익은 454조원 규모의 재건시장보다 오히려 공급망 안정일 수 있다. 유가 안정과 환율 안정, 물류 정상화는 한국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경제 관점에서 보면 전쟁의 끝은 새로운 공급망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공급망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축되느냐가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는 것은 단순히 유조선이 지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경제의 숨통이 조금 더 트이고, 안정적인 성장의 기반이 강화된다는 의미다. 전쟁의 끝에서 한국이 얻어야 할 가장 큰 선물은 공급망의 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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