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을 눌러도 한참 잘못 눌렀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이끈 예술감독 최빛나는 한국관의 막힌 혈을 뚫었다고 자신했다. 당혹스러웠다. 그 공간은 아리송하고 심심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해방공간이라도 있단 말인가. 한국관이 올해 선보인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물음표만 맴돌았다. 한국관을 '살아 숨쉬는 기념비'로 만들겠다는 포부와 달리, 혈을 잘못 짚어 기(氣)가 막혔다. 집중이 안 되고 산만했다.
최빛나는 지난 5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혈'을 강조했다. "침 혹은 바늘로 한국관이란 몸통을 찌르고 관통했어요. 침을 맞으면 아프고 몸이 무겁지만, 그 이후엔 몸이 풀려요."
그러나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난 1945년, 군사정권이 완전히 끝나고 문민정부가 시작된 1993년, 윤석열의 계엄 이후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2025년 등 그 굴곡의 시기마다 한국사를 관통한 아픔과 인내, 그리고 투쟁 끝에 찾아온 해방은 전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내심만 요구했다.
최빛나는 한국관 건축물 자체에 집착했다. “한국관에 원래 어떤 게 있었고, 어떤 게 사라졌고, 어떤 게 아직 남아 있는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 2층 공간의 벽을 허물고 옥상으로 가는 통로를 열었다. 그런데 베니스비엔날레를 찾는 무수한 관람객 가운데 한국관의 2층 공간이 막혔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공간을 열고 기를 뚫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었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그들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호기롭게 나아가다가 기세가 툭 꺾였고, 노혜리의 ‘베어링’은 8개 스테이션이 애도 등 나름의 주제를 내세웠으나 각각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각 스테이션은 정체가 불분명했고, 최고은과 노혜리 두 작가의 작품은 따로 놀았다.
특히 애도 스테이션의 책상 아래 바닥에 덩그러니 둔 한강의 조각 ‘더 퓨너럴’은 큐레이션이 작품 감상을 방해했다. 의자에 앉은 관객이 바닥의 작품을 보도록 몸을 기우는 애도의 자세를 유도했다지만, 작품에 담긴 감정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전시장 곳곳에 산만하게 흩어진 여러 파편 중 하나로 조각을 치부하게끔 만들어 애처로웠다.
지능에서 감각으로 무게추가 옮겨가는 시대, 장황한 설명보다는 본능으로 감각할 수 있는 국가관들이 인상에 남았다. 일본관은 아기인형을 통해 작고 연약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정신을 일깨웠고, 캐나다관의 바위 위 물에 젖은 담비 코트는 생태계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들을 상기시켰다. 독일관은 한국의 수많은 쪽방촌을 닮았고, 스페인관의 무수한 관광엽서에서는 수집가의 광기를 엿볼 수 있었다. 하물며 화려한 꽃과 DJ, 보드카를 앞세운 러시아관은 전쟁범죄국의 뻔뻔함과 독재정권에 빌붙은 이들이 만들어낸 천박한 보여주기식 흥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빛나는 20년간 유럽에서 활동했다. 그는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큐레이터나 아시안 큐레이터로 정의하는 것을 거부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혁명, 노동, 시민 등을 언급하던 그는 “전시가 와닿지 않는다”는 어느 기자의 말에 ‘프로페셔널’로 답했다. “지금까지 만난 분들은 다 프로페셔널한 분들이니까, 일반 관객은 어떨지 조금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베니스에서 누구와 소통하고 싶었던 걸까. 5명의 펠로(펠로우)도 그 부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미술계에 오래 몸담은 이는 말했다. “이번 기회에 감독 선정방법부터 고민해야 해요. 외국에서 활동한다고 하면 그저 앞뒤 안 가리고 중용하니 말이에요.”
2년 뒤 한국관에 올 예술감독은 관람객의 눈과 마음을 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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