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 '발품'은 20~30대 기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경제·산업·정치·사회·부동산·문화를 가리지 않고, 삶과 맞닿은 모든 현장을 추적합니다. 문제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끝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발품'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기 위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요하게 묻겠습니다. 독자가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대신 걸어가겠습니다.
'유명무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온 이북5도위원회(이북5도위)가 다시 존폐 논란의 정점에 섰다. 일부 도지사의 근태 문제에 이어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다. 논란은 개인 일탈을 넘어 연간 100억원대 예산으로 유지되는 조직이 지금도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번지고 있다.
이북5도위는 헌법상 영토 조항을 근거로 미수복 지역인 황해도·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남도·함경북도를 상징적으로 관할하는 행정기관이다. 그러나 실향민 1세대의 고령화로 정서적 구심점은 약해졌고, 북향민 지원과 북측 문화 보존 업무마저 기존 부처 사업과 겹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도지사들의 공직기강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기관의 역할과 예산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이 이북5도지사의 출근 실태와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 지성호 함경북도지사의 근태 문제와 업추비의 부적절한 사용 정황이 확인됐다. [그래픽=제미나이(Gemini)]
출근은 늦고 업추비 결제는 자택 인근…이북5도지사 공직기강 논란
지성호 함경북도지사가 30일 오전 9시45분 관용차를 타고 이북5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김민재 기자]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이 지난달 30일부터 11일까지 이북5도지사들의 출근 실태를 점검한 결과, 일부 도지사의 근태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성호 함경북도지사는 출장이나 휴가 등 별도 복무 처리 없이 반복적으로 지각하거나 조기 퇴근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점검 기간 동안 공식 휴무일과 출장일을 제외한 근무일에 단 한차례도 정시 출근하지 않았다.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복무 관리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픽=아주경제]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 역시 일반 국가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라는 기본 근무 기준을 적용받는다.
근태뿐만 아니라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다. 탐사보도팀이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이북5도지사 업무추진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 지사는 최근 6개월 동안 총 44회에 걸쳐 827만원의 업추비를 사용했다.
[그래픽=아주경제]
문제는 결제 장소와 시점이다. 지 지사의 업추비 사용 내역 가운데 근무지인 서울을 벗어난 결제는 18건으로 전체의 40.9%에 달했다. 이중 자택이 있는 인천 서구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이뤄진 결제는 총 6회 148만4000원이었다. 전체 결제액의 17.9% 수준이다.
가장 자주 결제가 이뤄진 곳은 자택에서 약 6㎞ 떨어진 칭OO양꼬치 식당이었고, 가장 가까운 결제 장소는 자택에서 약 2㎞ 떨어진 미미OO양꼬치 식당이었다. 특히 자택 인근 결제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뤄진 것으로 확인돼 공적 목적의 업추비가 사적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업추비는 공적인 직무 수행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특히 법정공휴일이나 토·일요일, 관할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에서 사용할 경우에는 그 불가피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근무지 밖, 자택 인근, 주말 사용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만큼 기관 차원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근무지를 벗어나 자택 인근에서 업추비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면 사적 유용으로 의심될 수 있다”며 “업무 관련성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성호 지사 측은 근태 문제와 관련해 “복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업추비 부정 사용 의혹에 대해서는 “규정에 적절하지 않게 사용된 부분이 있다면 유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100억 예산 중 사업비는 22억뿐…조직 유지에 묶인 이북5도위
지난해 이북5도위원회 예산 자료를 바탕으로 생성형AI로 생성한 그래픽 이미지 [그래픽=제미나이(Gemini)]
도지사들의 일탈 의혹은 이북5도위원회의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연간 1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실제 사업보다 인력과 조직 유지에 예산이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북5도위는 1949년 설립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조사·연구, 이북도민 화합과 소통, 북향민 정착 지원, 무형문화재 보존, 차세대 후계 육성 등을 공식 업무로 내세워 왔다. 이를 위해 차관급 도지사 5명과 명예 시장·군수, 명예 읍·면·동장 등 대규모 명예직 조직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설립 당시와 비교해 행정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실향민 1세대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2·3세대의 참여는 제한적이다. 북한이탈주민 지원은 통일부 업무와, 무형문화재 보존은 국가유산청 등 기존 부처 업무와 일부 겹친다는 지적도 있다. 이북5도위만의 독자적인 사업 영역이 무엇인지 묻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예산 지출 구조는 이러한 의문을 더 키운다. 2025년 이북5도위의 전체 예산은 106억700만원이다. 이 가운데 사업비로 분류된 ‘이북도민 관련 지원’ 예산은 22억9100만원으로 전체의 약 21.6%에 그쳤다.
세부적으로는 이북도민 관련 단체 및 행사 지원 12억900만원, 북한이탈주민 및 이북도민 지원 6억1300만원, 청사시설 개보수 4억6900만원 순이다. 반면 나머지 83억원 이상, 전체의 약 78.4%는 인건비와 처우, 운영비 등 조직 유지 성격의 항목에 배정됐다.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이 실제 사업비를 압도하는 셈이다.
구체적인 지출 항목을 보면 고위직과 명예직 관련 예산 비중이 두드러진다. 차관급인 이북5도지사 5명의 1인당 연봉은 올해 기준 1억5900만원이다. 이와 별도로 도지사 1인당 연간 1440만원, 총 7200만원의 업추비가 편성돼 있다.
관용차도 2024년부터 제네시스 G80 전기차로 일괄 교체해 운용 중이다. 5대의 연간 임차료만 1억2440만원이며, 운전기사 인건비와 유류비 등은 별도로 책정된다. 산하 명예직 조직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도 적지 않다. 명예 시장·군수에게는 매월 37만원, 명예 읍·면·동장에게는 매월 14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2025년 정부 통계상 위촉 중인 명예 읍·면·동장은 496명으로, 이들 유지에만 매년 12억원 이상이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황해도와 함경북도 등 일부 지역의 공석이 반영된 일시적 수치로 정상 편제인 829명이 모두 위촉될 경우 명예직 수당 예산은 연간 18억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실제 정책을 기획하고 현장 사업을 수행할 인력은 많지 않다. 이북5도위의 현행 조직도상 인원은 51명, 정원은 45명 수준이다. 이 가운데 5명의 도지사를 수행하는 전속 운전기사와 비서진 등 23명, 위원회 겸직 9명을 제외하면 실제 정책 기획과 현장 실무를 담당할 인력은 28명에 불과하다.
이북5도위는 사업 예산 부족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한정된 예산 대부분이 고위직·명예직·조직 운영에 묶여 있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환경이 변하고 기관의 본래 목적이 옅어지는 가운데 기존의 고비용·저효율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친목 중심 사업에 실향민·북향민도 “체감되는 역할 없다” 쓴소리
예산의 상당 부분이 조직 유지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은 이북5도위의 실효성 논란으로 이어진다. 기관이 내세우는 핵심 명분은 이북도민 지원과 북향민 정착, 실향민 기억 계승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체감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탐사보도팀은 지난 20일 서울·경기·인천 일대에서 북향민과 실향민들을 직접 만나 이북5도위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답변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이들은 이북5도위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알고 있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경험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임영선 이북9도민 정착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아주경제 탐사보도팀과 만나 이북5도위원회와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승호 기자]
북향민 출신으로 33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임영선 이북9도민 정착위원회 위원장(63)은 “통일 비전이나 정착 지원이라는 본래 목적은 사라졌다”며 “조직 유지와 인건비 확보가 실질 목적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위원장은 실향민 1세대의 정서적 구심점 역할이 약해진 뒤에도 헌법상 영토 조항의 상징성만 반복적으로 앞세워 예산을 유지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북향민 활동가 조경일씨(38)도 “이북5도위가 활약하는 게 없다. 토론회에 한 번 가본 것 외에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면 폐지를 하든지, 아니면 완전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향민 단체와 북향민 사이의 거리감도 문제로 짚었다. 조씨는 “이북5도위가 실향민을 기반으로 한 조직이라면 북향민들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이 순리일 수 있는데, 일부 실향민 단체는 이를 세력 문제로 인식해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북5도위가 실향민과 북향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세대와 집단 간 간극이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송인 겸 유튜버 한송이씨가 경기도 광주시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 탐사보도팀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방효정 기자]
북향민 출신 방송인이자 유튜버인 한송이씨(34)는 이북5도위의 낮은 인지도를 문제로 봤다. 한씨는 “이북5도위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북향민과 이북도민 간 교류나 정착 지원 등 구체적인 사업 내용까지는 알지 못했다”며 “취지가 좋은 만큼 더 많은 북향민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씨는 “주변 젊은 연령대의 북향민들을 봐도 이북5도위의 인지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실제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 아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젊은 북향민들 사이에서는 이북도민회와 이북5도위원회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홍보 방식의 변화도 주문했다. 한씨는 “이북5도위와 관련 활동을 알리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며 “유튜브나 숏폼 등 온라인 채널을 활용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필요하다면 직접 홍보에 참여할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실향민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향민 3세 최씨(62)는 “3세대로서 군민회에 참석해도 유대감이 낮고 어색해 잘 가지 않는다”며 “이북5도 체육대회도 과거 아버지를 대신해 한 번 가본 것이 전부인데, 기념품 수건 한 장 받아오는 것 외에는 실질적인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최씨는 “기관에 연간 100억원, 혹은 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해도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며 “대다수 실향민이 개최 시기조차 모르는 행사에 세금을 쓰기보다 예산을 대폭 줄이고, 나머지는 구호 단체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곳에 쓰는 편이 더 실효성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북5도위의 연락망 부재도 지적했다. 최씨는 “명절이나 생일 등 평소에 이북5도위에서 연락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실향민 명부가 있다면 문자 한 통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런 기본적인 관리조차 체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연락망 관리조차 부실하다면 예산 집행의 투명성에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향민 2세 김씨(68)도 이북5도위가 주최하는 행사가 실향민들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번 참여해 본 적은 있지만 가게 운영이나 농사일 등 각자의 생업이 우선이다 보니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자주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또 세대 변화에 따른 정체성 약화도 문제로 꼽았다. 김씨는 “고향에 대한 한이 서린 1세대 어른들과 달리, 2세대와 3세대로 내려올수록 실향민이라는 소속감이 희미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실향민 1세대들은 지역 내에 이북의 역사와 실향의 아픔을 알릴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가 조성되길 바랐다”며 “그런 기억을 남기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영애 사단법인 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 탐사보도팀과 만나 이북5도위원회의 역할을 지적하고 있다.[사진=박승호 기자]
실향민 2세이자 사단법인 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인 김영애씨(70)도 실향민 기억 계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씨는 1세대가 대부분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고향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이 없는 2·3세대가 관성적인 체육대회나 일회성 행사에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후세대가 실향민 역사를 온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유인책이 전무하다”며 “이북5도위원회의 예산 집행을 체육대회 등 일회성 축제 경비에서 역사·문화 보존과 후세대 양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향민의 기억을 문화적 자산으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사관 건립 등에 예산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이북5도위의 사업 방향이 행사와 조직 관리 중심에서 기록·보존·교육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와 맞닿아 있다.
이 같은 당사자들의 반응은 이북5도위의 현 운영 방식이 실제 수요와 괴리돼 있음을 보여준다. 실향민의 아픔을 위로하고 북향민 정착을 지원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체감되는 사업은 체육대회와 같은 일회성 친목 행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일부 실향민들은 이른바 ‘깜깜이식’으로 이뤄지는 도지사 임명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모 절차를 도입하거나 도지사를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해 행정의 정당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예직 전환 넘어 폐지론까지…정치권서 커지는 개편 압박
정치권에서도 이북5도위 개편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핵심은 이북5도지사의 명예직 전환, 사무처 중심의 실무 조직 개편, 나아가 기관 폐지와 기능 이관이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런 조직을 개편하면 매년 100억원 이상 예산이 줄어드는데, 이런 것은 과감하게 폐지하고 이북5도위의 업무를 통일부로 이관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이북5도위 개편을 주장해 온 대표적 인물이다. 용 의원은 2023년 이북5도위 예산에서 인건비만 증가하는 실정을 지적하며 “9년 동안 인건비만 늘리며 ‘꿀 빠는 직업’이라는 조롱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북5도법 개정과 함께 대대적인 사업·조직 개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북5도지사를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고 이북5도위 사무처를 강화해 실무 중심 조직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북5도지사의 명예직 전환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에는 민봉기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2006년에는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이북5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이북5도지사의 명예직 전환을 시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올해 2월에는 이북5도위를 폐지하는 법안도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이북5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폐지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수복 지역에 대한 접근과 실질적 행정 수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북5도위 운영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 법안 발의의 주요 취지다. 해당 법안은 현재 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시민사회도 무용론에 힘을 보탰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된 보고서에서 석탄보조금과 함께 이북5도위 예산을 예산 낭비 사례로 소개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해체 말고는 대안이 없다”며 “불필요한 조직을 운영하는 100억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 명예직 전환 같은 논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예산 부족과 무용론의 악순환…기로에 선 이북5도위
지난 22일,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이북5도청에서 정경조 평안남도지사(왼쪽)와 명계남 황해도지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박승호 기자]
다만 이북5도위는 폐지론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주어진 예산과 인력으로는 본래 업무인 조사·연구와 북측 문화 전승 사업 등을 충분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반론이다.
이북5도위는 지난 22일 탐사보도팀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이북5도청에서 만나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폐지론이 제기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내부 사정을 밝혔다. 이북5도지사들이 직접 기관의 속사정을 언론에 설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경조 평안남도지사는 “조사 연구를 수행하고 싶어도 예산도 없고 전문가도 없고 조사 기간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작년에도 재정 담당 국장과 함께 기획재정부 담당자를 수없이 쫓아다녔지만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경조 평안남도지사가 지난 22일, 평안남도지사실에서 이북5도위원회의 역할과 활동 등을 기록한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방효정 기자]
특히 정 지사는 무형유산 관련 예산 확보 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는 “2025년도 예산을 확보할 당시에도 무형유산 지원 관련 법안을 행정안전부에 보여주며 예산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왜 이북5도위원회가 무형유산 예산이 필요하냐’는 취지의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북5도위의 업무 중 하나인 북측 무형유산 유지·전승에 필요한 예산을 요구했지만, 행정안전부 담당자조차 이북5도위의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명계남 황해도지사도 “김구 선생의 말씀대로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화 전승이 중요하다”며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1세대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뒤에도 북측 문화를 유지하고 전승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지사와 명 지사는 이북5도위 존속의 필요성을 북측 문화 연구·조사와 전승에서 찾았다. 실향민 1세대가 빠르게 사라지는 상황에서 북측 생활문화와 무형유산을 기록·보존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예산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데다 기관 폐지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정작 본연의 기능은 더 위축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명계남 황해도지사가 지난 22일 이북5도청에서 진행된 아주경제 탐사보도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북5도위원회가 작성한 연구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민재 기자]
이는 이북5도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재 예산 구조는 조사·연구와 문화 보존 같은 실질 사업보다 고위직 처우, 명예직 수당, 차량 임차, 조직 운영비 등 기관 유지 항목에 편중돼 있다. 그 결과 사업을 추진할 여력은 부족한 반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계속 지출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예산과 전문인력이 부족해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과 부재는 다시 무용론을 키운다. 무용론이 커질수록 예산 확보는 더 어려워지고 기관의 역할은 다시 위축되는 셈이다.
결국 북측 문화 연구와 실향민 기억 보존 기능이 필요하다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 구조부터 재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 유지에 예산이 집중되고 실질 사업이 뒷전으로 밀리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이북5도위의 존폐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이북5도위 운영이 국민의 시각은 물론, 정작 실향민들의 현실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시대 변화에 맞는 과감한 개편과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