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딥시크(DeepSeek)가 최신 AI 모델 ‘V4프로’ 가격을 대폭 낮췄다. 입력 토큰 100만개당 0.0036달러, 출력 토큰 100만개당 0.87달러 수준이다. 미국 오픈 AI의 최신 모델 GPT-5.5의 가격은 100만 토큰 입력시 5달러, 출력시 30달러다.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저렴하다. 중국은 “최고 성능”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성능을 훨씬 싼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으로 시장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사용했던 전략과 닮아 있다. 미국 애플이 프리미엄 시장을 지배하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빠르게 기술 격차를 줄이며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을 잠식했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이제 AI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AI 시대에 비용은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다. 핵심 경쟁력 자체다. AI는 한 번 쓰고 끝나는 기술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 언론과 제조업, 금융과 의료, 교육과 유통까지 모든 산업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인프라다. 결국 AI를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가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AI 비용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시험적으로 도입해왔다면 앞으로는 업무 전체에 AI를 본격 적용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문제는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수록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AI 시장은 ‘최고 성능 모델’과 ‘초저가 범용 모델’로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기업들은 최첨단 프리미엄 AI를 중심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려 하고, 중국 기업들은 저가·대중형 AI 시장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
중국 전략의 핵심은 명확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쓸 만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 업무에서는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 초고성능 AI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번역과 문서 요약, 고객 응대, 검색, 회의 정리 같은 업무는 일정 수준 이상만 되면 된다. 이런 영역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훨씬 중요해진다.
SCMP가 “중국 기업들이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AI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고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높은 성능과 독점적 플랫폼 생태계를 통해 수익을 내려 하고, 중국은 저렴한 가격과 빠른 확산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 한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와 네트워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AI 플랫폼 경쟁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 한국 기업 상당수는 현재 미국 AI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 부담이 커질 경우 중국 저가 AI 유혹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 가격 비교가 아니다. AI는 국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 산업 경쟁력까지 연결된 문제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중요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기술 종속 문제도 함께 봐야 한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대부분 중국 저가 AI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데이터와 산업 생태계가 해외 플랫폼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미국 AI만 사용할 경우 비용 부담과 플랫폼 의존도가 심화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독자 AI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현실적 활용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한국형 AI 비용 구조’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AI는 이제 전기나 인터넷 같은 사회 인프라가 되고 있다. 특정 기업 몇 곳만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지방 중견기업, 병원과 학교, 소상공인까지 AI를 활용할 수 있어야 진짜 AI 경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AI 사용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결국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만 AI 혜택을 누리게 된다. AI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AI 경쟁의 핵심은 단순 기술 우위가 아니라 ‘얼마나 넓게 확산되느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혁명도 결국 저렴한 비용과 대중화가 승부를 갈랐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였다. AI 역시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저가 AI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가격 경쟁이 지나치게 심화되면 품질 저하와 보안 문제, 저작권과 개인정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AI는 단순 상품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데이터를 학습하는 시스템이다.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신뢰 가능한 AI’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축하느냐다. 기업도 단순히 가장 싼 AI만 찾을 것이 아니라 데이터 보안과 안정성, 장기적 기술 생태계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AI 경쟁은 이제 반도체·전기차·배터리를 넘어 새로운 산업 패권 전쟁이 되고 있다. 미국은 성능으로, 중국은 가격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국 살아남는 국가는 기술력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더 이상 관망할 시간이 없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히 “좋은 모델을 만드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기업과 국민이 AI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 AI를 싸고 안전하게, 그리고 대규모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만이 미래 산업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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