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시사평론가]
| 쌀집 아저씨와 편의점 아주머니, 두 사람이 싸웁니다. “아니... 그 양반이 나이도 많고, 충분히 치매일 수 있지... 이미 죽은 신기하 의원을 찾았다고 하잖아요... 아주머니는 감쌀 걸 감싸야지... 원....”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왜 고집을 부려요? TV 나와서 멀쩡하게 말만 잘하는 사람을!” |
1997년 선거 직전에 DJ에 대한 ‘치매설’이 돌았습니다. 일명 ‘~카더라’통신이었는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73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62세,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49세이었습니다. 유력했던 후보들보다 적어도 11살, 24살 이상이었던 김대중 후보는 속이 탔습니다. 무려 4번째 도전인 대통령 선거에서 상상도 못했던 ‘치매설’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김대중 후보는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TV토론에서 다른 패널의 질문이 없었음에도(!) 먼저 ‘치매설’을 거론한 것입니다. 모든 대화에서 첫째는~, 둘째는~, 이라며 조곤조곤 자신의 날카로운 논리를 펼치면서 좌중을 압도했던 DJ의 입장에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토론에서는 “유세 현장에 내 앞에 있던 분이 ‘치매 걸렸다고 하더니, 멀쩡하네’라고 하더라”라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냈습니다. 네거티브를 웃음으로 극복한 사례입니다.
네거티브(Negative)
원래 네거티브는 사진 필름을 의미했습니다. 피사체에서 흑백 부분을 포함한 보색(補色 / complementary color)관계, 서로 반대되는 색으로 되어 있는 필름입니다. 촬영된 피사체의 가장 밝은 영역은 가장 어둡게 나타나고 가장 어두운 영역은 가장 밝게 나타나게 됩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양입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으로 불리는 장원영양은 비주얼로 탑을 찍습니다. 하지만 네거티브 필름만 보면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선거에서의 네거티브 전략은 사진과 같이 검은색을 희게, 흰색을 검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선거에서 경쟁자는 다 같은 민주정치에서의 파트너로 인정해야만 공존이 가능합니다. 세계관과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진보적인 입장과 보수적인 입장이 서로 부딪히지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공생(共生·함께 살아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선거는 치러질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고 반대했던 것도, 윤석열의 12.3 반란을 맨 몸으로 부딪혀 저지한 것도, 상대방을 멸절(滅絶·제거하여 없애다) 시키려는 의도를 알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우리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악마화’ 하고, 진실을 거짓으로, 가짜를 진짜로 뒤바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거 기간에 유권자를 속이고 그로 인해 유권자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범죄입니다. 이 범죄적 행위에 일부 언론은 동참해서, 검찰이 흘려주는 그릇된 정보를 신문 1면에 싣습니다. 그래놓고 서로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상’을 주고받습니다. 이런 신문사는 당장 문을 닫아야 하지만 지금도 정정 보도를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과거 전체를 부정당하기 때문이겠지요.
네거티브와 후보자 검증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후보자 검증과 네거티브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현실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데 과연 그 검증이 네거티브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어느 것이 유권자의 알권리를 위한 검증이고, 어느 것이 선거의 판도를 뒤집으려는 네거티브인가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선거에서 후보자 검증은 유권자의 판단에 필요한 ‘공적(公的) 정보를 확인하고 비교하는 과정입니다. 네거티브는 상대방 후보의 약점이나 문제점을 드러내는 폭넓은 공격 전략입니다.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둘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목적과 내용, 표현방식과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A.I. 툴을 이용해서 둘을 비교하랬더니 이렇게 답을 합니다.
- 공통점
: 둘 다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후보의 경력, 정책, 도덕성, 자질, 과거 발언이나 행적을 다룰 수 있습니다.
: 선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 차이점
종합해보면, 문제를 제기하는 측의 주장이 정책, 직무능력, 공적 경력처럼 공적 판단에 필요한 정보 또는 사생활이나 가족사라 하더라도 공적 영향력이 있다면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사실 확인이 가능한 주장인가도 중요합니다. 자료나 기록, 발언처럼 검증 가능한 근거가 있다면 검증에 가깝지만, 근거가 빈약하면 네거티브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또 주장에 대안제시가 있는지도 검증인지 네거티브인지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문제제기가 “왜 문제가 되는지”와 함께 “어떤 기준이 더 낫다”를 제시한다면 검증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저 단순 흠집 내기라면 네거티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원조는 미국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여전히 횡횡하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으로 불리하던 판세를 일거에 뒤집었던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원조는 세계에서 가장 정치 컨설팅이 발전했던 미국에서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1988년에 있던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George H.W. Bush) – 일명 아버지 부시 – 와 민주당의 마이클 스탠리 두카키스(Michael Stanley Dukakis)의 대통령 선거전입니다.
이 선거에 ’다스베이더‘라는 별명을 가진 37살의 젊은 정치 전략가 리 애트워터(Lee Atwater)라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정치 컨설턴트이자 후보자 부시의 최측근으로서 이 선거를 온통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는 유권자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자극하는 메시지와 광고를 통해 민주당의 두카키스 후보를 철저하게 망가뜨렸습니다.
특히 애트워터의 대표적 네거티브 전략은 ’윌리 호튼‘ 스캔들입니다. 흑인 윌리 호튼은 강간범으로 복역하던 죄수인데, 두카키스가 매사추세츠 주지사일 때, 주말 임시휴가를 받고 도망친 뒤 또 강간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합니다. 애트워터는 “두카키스는 살인범의 가장 좋은 친구이고, 성실한 미국 시민의 가장 나쁜 적”이라며 두 사람을 나란히 보여주는 광고를 전국에 도배합니다. 졸지에 윌리 호튼은 두카키스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버린 셈이었습니다. 물론 두카키스가 대응을 제대로 못한 탓도 있습니다만, 근본적인 원인은 밑도 끝도 없이 공화당 레이건 행정부가 실행한 ’죄수 주말휴가‘ 제도를 두카키스의 책임으로 밀어버린 애트워터에게 있습니다. 두카키스의 인기는 한 순간에 폭락하고 결국 무능한 부시가 당선되고 맙니다.
사실 두카키스는 미국 동북부 지방인 뉴잉글랜드 지방의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 시켜서 ’메사추세츠의 기적‘을 이룬 장본인으로 미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훌륭한 인물도 리 애트워터의 새빨간 거짓말과 마타도어(흑색선전)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정치를 ’레슬링‘ 게임과 같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의 정치 인생을 망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젊은 정치 컨설턴트 리 애트워터는 부시를 당선시키고 38살의 젊은 나이에 미공화당 전국의장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1990년 3월, 39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리 애트워터는 사망 전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자신이 미국 정치에 끼친 해악을 반성하면서 미국 국민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상처를 받은 정치인들에게, 그리고 난데없이 미국 정치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게 되었던 윌리 호튼에게 사과를 한 것입니다.
네거티브로 승리해도 모두의 패배다
정치인이 재임기간에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책과 공약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정치인의 정책과 공약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동시에 정책과 공약을 추진해 나가는데 큰 추진력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책선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네거티브 선거전에만 몰두하게 되면 이 모든 기회를 스스로 제거하는 꼴이 됩니다. 유권자는 당선된 정치인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네거티브의 인상으로 저 사람이 싫으니 이 사람을 찍는, 이른바 묻지마 지지에만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전은 낙선자는 물론 당선자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결과를 만듭니다. 그래서 네거티브로 승리해도 모두의 패배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카키스의 패배는 지미 카터의 패배와 함께 미국 민주당의 커다란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네거티브에 질린 민주당은 더욱 우향우를 가속화 했고, 이 경향은 이후 등장한 빌 클린턴 정권은 물론 버락 오바마까지도 제2의 두카키스와 제2의 카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속에서 제대로 된 진보적 정책을 펴지 못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공화당의 경우 더 비참했습니다. 조지 H. W. 부시는 선거전에서 네거티브로 일관한 이유로 그의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세금 문제나 국방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고, 정책 추진 동력도 얻지 못하였기에 그의 정권이 우왕좌왕했습니다. 결국 민주당 빌 클린턴에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욕을 먹으며 정권을 내주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미국은 퇴보했고, 어쩌면 지금 ’지는 해‘ 미국이 된 것은 그 때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뱀발 – 유권자 여러분께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1부 네거티브 전쟁‘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지면 상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한 ’네거티브 선거‘의 진실을 더 깊이 있게 아실 수 있습니다.
필자 주요이력
- 前 정치컨설턴트
- 前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 1회 선거아카데미 교수
- 現 정치평론가
- 現 경제민주화 네트워크 자문위원
- 現 최요한콘텐츠제작소 소장
저서 : 유권자를 사로잡는 현장정치 오마이선거 오마이전략(매일컴 刊,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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