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올해 1∼3월 분기 사상 최대 수준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정작 핵심 제품인 아이폰 판매는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애플은 해당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1111억8000만 달러(약 164조원)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폰 부문 매출은 시장 예상치를 소폭 밑돌았고, Tim Cook 최고경영자는 칩 공급망의 유연성 부족이 판매 제약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금력과 조달 능력을 갖춘 기업조차 공급망 앞에서는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번 실적 발표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히 애플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AI) 확산과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으로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전 세계 제조업은 다시 ‘칩이 곧 생산’인 시대를 맞고 있다. 제품 기획, 마케팅, 브랜드 파워가 아무리 강해도 반도체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출하 계획은 무너진다. 팬데믹 시기 자동차 업계가 겪었던 생산 차질이 이제 스마트폰과 IT 산업 전반으로 재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 경고를 남의 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높고, 메모리 분야 세계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시장 구조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인공지능 서버용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력 등 새로운 전선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공급망 불안이 길어지면 단순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고객사의 주문 전략과 투자 방향까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하나는 생산능력 확대다. 세계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안정적 증설과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공급망 다변화다. 특정 지역, 특정 공정, 특정 협력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지정학 충격과 원자재 리스크를 견디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대만해협 긴장, 물류 불안은 언제든 현실 변수로 돌아올 수 있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 민간 산업이 아니라 경제안보 산업이다. 전력·용수·인재·세제·입지 규제 등 기업 혼자 풀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다. 투자 속도를 높일 인허가 개혁, 연구개발 세제 지원, 첨단 인력 양성 체계를 더 미룰 이유가 없다.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싸우는 동안 정부가 국내 규제로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 역시 과거 성공 공식에 안주해선 안 된다. 메모리 강자라는 지위만으로 미래가 보장되던 시대는 끝났다.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면 연구개발 투자와 과감한 조직 혁신, 글로벌 고객 맞춤형 전략이 필수다. 공급망 위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시장 재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애플과 같은 세계 최고 기업도 칩이 없으면 흔들린다. 반도체를 국가 주력 산업으로 삼는 한국이 이 신호를 가볍게 본다면 대가는 더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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