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깜짝 성장의 착시, 잠재성장률 1%대 추락이 더 두렵다

  • ―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 기초체력 더 키워야 한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주요 투자은행들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정부도 정책 효과를 강조하며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겉으로 보면 회복의 신호다. 그러나 숫자만 보고 안도하기에는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성장은 기저효과와 반도체 호황, 환율 등 외부 요인이 겹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일시적 반등일 수 있다는 의미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잠재성장률이 1%대 중반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생산성을 동원해 물가 자극 없이 낼 수 있는 최대 성장 수준이다. 이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경제의 뿌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단기 성장률이 높아도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노동 공급은 줄고 있다. 투자 여력도 둔화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 속도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요소들이 동시에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성장은 체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기대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이 이를 가리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이 수출을 견인하며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이는 분명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성과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충격에 취약해진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전체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결의문을 읽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인근에서 노조 집회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결의문을 읽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환경에서는 경제 전반의 긴장도도 높아진다. 성장 기반이 약해질수록 이익을 둘러싼 갈등은 더 쉽게 표면으로 드러난다. 최근 삼성전자를 둘러싼 노사 갈등과 주주 간 충돌은 단순한 개별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 고성장기에는 내부적으로 흡수되던 갈등이 저성장 환경에서는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의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로 읽어야 한다.


결국 해법은 분명하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구 구조는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면 자본 축적과 생산성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주력 산업을 발굴하고 기술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첨단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여기서도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단순한 ‘착시’가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 자체가 아니라 그 사이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성장 방식이다. 단기 호황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산업 전반으로 성장 기반을 넓혀야 한다.


서비스업 개혁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다만 인구 감소 시대에는 기존의 내수 중심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다. 서비스업 역시 수출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의료와 관광, 콘텐츠, 교육 등은 충분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분야다. 내수 감소를 해외 수요로 보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실행이다. 규제 개혁과 산업 개선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과제지만 이해관계 충돌과 정치적 부담으로 지연돼 왔다. 이제는 이를 풀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상설 협의체를 만들고 규제 개혁을 묶어 처리하는 방식 등 정치적 부담을 분산할 수 있는 접근이 요구된다. 선언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1분기 실적은 분명 반가운 신호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체력이다. 잠재성장률이 1%대에 머무는 한 한국 경제는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낙관보다 냉정한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성장은 결과다. 잠재성장률은 원인이다. 원인이 바뀌지 않으면 결과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금이 바로 그 원인을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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