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아주경제적 시선] 돈을 풀자 스태그플레이션 유령이 다가온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는 오르는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물가라도 낮아져야 성장률을 올리는 거시경제정책을 사용하기가 수월한데 성장률은 낮아지는데 물가마저 오를 때는 거시경제정책을 사용해 어려움을 타개하기가 어렵다.

통상 거시경제정책은 수요 안정화 정책이다. 주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사용한다. 경기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면 확장적 통화정책이나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가 반등되도록 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성장률은 낮아지는데 물가가 오르는 스태크플레이션일 때 낮아지는 성장률을 반등시키기 위해 수요 안정화 정책을 사용하면 물가가 더욱 올라가게 된다.

총수요곡선과 총공급곡선 중에 만약 총공급곡선 기울기가 수직에 가까울수록 물가 상승 폭은 커지게 된다. 작은 수요 안정화 정책에도 물가는 크게 상승하게 된다. 그 결과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도 올라가게 되어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그래서 스태크플레이션을 가장 치유하기 힘든 상황으로 여긴다.
 
지금 총공급곡선은 상당히 수직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와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이 공급비용을 증가시키고 있고 심지어 원유, 나프타 등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조업 중단 등으로 인해 공급도 줄고 있다. 이런 경우 총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한 정책은 소득은 크게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물가 수준만 크게 높이게 된다.

수요를 줄이면 성장률이 더욱 낮아지고 수요를 늘리면 물가가 더욱 오른다. 이런 때에는 비용을 줄이고 공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만만치 않다.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수요를 늘리려 총수요곡선을 확장적으로 사용하면 물가는 급격히 오르게 된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게 되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해 경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바로 이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OECD는 최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불과 3개월 만에 2.1%에서 1.7%로 낮췄다. 중동 전쟁 중에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2.9%)는 유지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주요 20개국(G20) 중 두 번째로 큰 하향 전망치를 내놨다. 한국 경제의 높은 수출 의존도와 원유 수입의 높은 중동 의존도가 주요 원인이다. 성장률은 낮아지는데 물가 상승률은 고유가·고환율로 인해 0.9%나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전망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한국 수출입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해상운임이 연일 치솟는 가운데 선박 보험료마저 한 달 새 최대 10배 가까이 폭등하며 수입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30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대표적 해상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한 달 전보다 약 37% 급등한 1826.77을 기록했다. 선박 보험료도 심각하다. 전쟁 위험 지역을 지나는 일부 선박의 보험료는 기존 5000만원에서 5억8000만원으로 무려 1056%나 치솟았다. 이러한 운임과 보험료의 동반 상승은 고스란히 수입 물가에 반영된다. 실제로 2월 수입물가지수는 8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으며 4월에는 그 폭이 더울 커질 전망이다.

‘4월 위기설’도 나오고 있다. 3월까지는 기업들의 재고 물량으로 버텼지만 4월부터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완제품 생산 비용을 높여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중동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비료 등 원자재 수급이 끊기면 생산라인이 멈추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금리마저 오르고 있다. 5대 은행 고정금리는 연 4.410∼7.010%로 중동 불안 등에 의해 3년 5개월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월 연체율도 한 달 새 0.02%포인트 증가했다. 국내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인상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대출 금리의 지표가 되는 시장금리에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동 사태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고 주요국의 물가 상승 부담도 커져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달 고가 주담대 가산금리도 오를 전망이다. 국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고정 금리가 7%대를 넘어서면서 이른바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한 사람)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주담대 혼합형 금리가 7%를 넘어선 것은 2022년 10월 이후 41개월 만에 처음이다. 경제가 이처럼 살얼음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고유가·고환율에다 선박운임·보험료 급등으로 물가가 치솟고 그 결과 금리도 오르고 결국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민생지원금을 소득하위 70%(약 3580만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 지급하는 26조2000억원 규모의 ‘전쟁추경’이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올해 출범한 기획예산처가 내놓은 첫 추경안이자 작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로는 두 번째 추경안이다.

정부는 '중동 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2026년도 추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총지출은 753조1000억원으로, 본예산(727조9000억원) 대비 25조2000억원 늘어났다. 이와 별도로 국채 상환에 1조원이 쓰인다. 정부는 △고유가 대응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등 3개 분야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현금과 비슷하게 쓸 수 있는 직접 지원금이다. 고유가·물가 상승의 영향이 광범위한 점을 고려해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준다. 4조8000억원을 투입해 소득 기준 하위 70%에 해당하는 3256만명에게 1인당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60만원을 지원한다. 하위 70%에 속하면 기본적으로 10만원을 지원하고 지방 거주자와 취약계층은 추가로 준다.

작년에 지급한 민생 회복 소비쿠폰처럼 신용카드·체크카드·지역화폐 중에서 선택하게 해 저축이 아닌 소비로 이어지도록 한다. 사용처를 지역화폐와 동일하게 설정해 지역·골목 상권 활성화를 도모한다. 지원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기초수급자·차상위가구에 먼저 지급하고 이후 건강보험료 등을 토대로 소득 하위 70%를 선별해 다시 지원금을 준다. 

K패스·에너지바우처 확대에도 1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국민들의 고유가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K패스는 월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사용 금액의 20%(일반국민)~53.3%(저소득층)를 환급해주는 서비스다. 추경 예산을 편성해 환급률을 30~83%로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확대한다. K패스 환급률이 올라가면 대중교통 이용자가 65만명가량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봤다.

라면과 빵 등 먹거리 및 생필품을 지급하는 그냥드림센터를 현재 150곳에서 300곳으로 늘리는 사업도 이번 추경에 담겼다. ‘복지 신청주의’ 때문에 자격이 되지만 복지 혜택을 못 받는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다. 석유 최고가격제 실행 지원, 전쟁 피해 기업 지원과 공급망 안정에도 국가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밖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세부내역 설명도 없이 지방재정 확충에 9조7000억원을 배정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방재정 확충으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경을 통한 막대한 직접지원은 결국에는 물가를 상승시키고 그 결과 금리도 올라가게 되어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증가시키게 된다. 일시적으로는 민생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종국적으로는 금융비용 증가 등으로 민생 안정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국가재정 사정만 악화시키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이것이 포퓰리즘의 폐해다.

재원은 추가적인 국채 발행 없이 반도체 업황 개선과 증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 25조2000억원과 기금 여윳돈 1조원 등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727조9000억원이었던 올해 총지출은 753조1000억원으로 확대된다. 지난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11.8% 증가한 금액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정부의 26조2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이번 추경 의도는 전쟁 대응이 아니라 선거를 앞둔 매표 추경”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심각한 산업·경제 위기 상황을 고려해 추경 처리 일정에 어제 합의했다”고 했다. 좀 더 세세한 부분에 대한 점검과 논의가 있었으면 좋을 듯했다.

이번 추경은 2020년 4월 총선이 있었던 해 4차 추경 때 때마침 코로나 발생 시기와 겹치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 377만명 대상 현금 지원, 특수고용 노동자·프리랜서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 저소득층 생계 지원 등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속도'와 '두꺼운 지원'을 강조하며 네 차례에 결쳐 66조8000억원의 추경이 집중적으로 시행된 상황과 많은 점에서 비유된다. 선거를 앞두고 재난을 계기로 많은 재정이 뿌려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총 10차례 150조원 넘는 추경을 편성하며 역대 정부 중 가장 활발하게 추경을 활용했다. 이전 박근혜 정부의 약 1.7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결국 2017년 GDP 대비 34%(658조원)였던 국가채무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21년에는 43.6%(969조원)까지 급등해 위기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고 있는 40%를 돌파했다.

이미 추경이 아니더라도 2026년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1.6%까지 급등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추경은 신중해야 할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예산의 37%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총지출 증가율을 상회하지만 재정승수는 낮은 현금살포식 복지·고용·보건 예산이나 지역화폐, 농어민기본소득, 사회연대경제, 재생에너지 등 당장 급하지 않은 이념 편향 예산이라고 지적되고 있는 부문의 예산을 절약해서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난국 극복 예산을 마련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도 지난 3일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불요불급한 예산을 과감히 도려내 최적의 효율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경제의 분모인 국내총생산(GDP)을 키워 재정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가채무가 늘어도 GDP가 커지면 국가채무비율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 이는 공급 측면에서 지원이 있어 성장률이 올라가야 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올해 GDP 성장률이 2% 미만으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총지출 증가율을 8.1%까지 끌어올린 재정 운용으로 채무 부담을 낮출 수 없다. 지출 확대가 이어지면 올해 728조원인 본예산이 800조원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다.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중요한 변수다. 이번 선거에서도 선심성 예산 집행이 반복되면 재정건전성은 직접 타격을 입게 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경제 규모 확대와 재정 안정성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49.1%에 달했고 2030년에는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을 두고 팬데믹 이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이 매년 100조원 안팎으로 불어나는 만성 적자 구조라고 지적하며 부채 증가 속도를 경고했다. 박 후보자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확장과 건전성 사이에 균형이 중요하다. 재정준칙 도입 등 제도적 장치의 신속한 마련이 요구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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