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예전에 TV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할 당시 만났던 10대 초반의 천재 소리를 듣던 첼리스트 장한나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이는 지금 유럽의 어딘가에서 세계적인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서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술의 전당 상근직 사장(Chief Executive)'이라니. 문화예술기관의 수장으로서 경영인으로서 얼마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혹시 우리는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할 귀한 기둥감 재목을, 음악과는 거리가 먼 하찮은 서까래로 써서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장한나는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지휘를 시작한 이래 암스테르담과 밴쿠버, 함부르크 등지에서 활약하며 지휘자로서 K 클래식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뒤를 이어 포스트 거장 시대의 선두 주자로 주류 유럽 오케스트라가 선택한 차세대 마에스트라로 평가받는 그가 지휘를 잠시 내려놓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축하보다 걱정하는 이유는 혹여라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이 아니라 사장이란 자리가 전공인 공연 기획보다 예산 확보, 조직 관리 등 정치적, 행정적 역량이 많이 요구되는 직책인지라 자유롭고 열정적인 예술가 장한나가 딱딱한 행정 조직의 틀 안에서 소모되거나, 경영과 행정에 에너지를 쏟느라 그가 가장 잘하는 ‘음악’을 할 시간을 빼앗긴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최고의 예술적 자산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적 성과가 크면, 경영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첼로를 잘하니까 대금도 잘 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한 분야의 천재는 만능’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 동네 축구에서도 아무리 축구를 잘하는 선수도 공격수와 수비수로 나뉘고, 각자의 포지션에서 가장 알맞은 역할을 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기본적인 것을 까먹는다. 예술적 영감과 조직의 생존을 책임지는 경영은 마치 농구와 배구가 같은 종목이라고 하지만 전혀 다른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인 것과 같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장한나의 사장 임명은 분야별 전문성과 고유한 예술적 깊이를 간과한 채 ‘유명세’나 ‘막연한 재능’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세태의 반영이자 ‘천재성’에 대한 환상과 신화 그리고 무조건 '장한나가 하면 잘할 것'이란 ‘이름값’을 내세우면서 예술적 본질보다는 마케팅적 효율성을 우선 하며 깊이 있는 비평과 성찰보다 화제성만을 쫓는 대한민국 문화부의 문화적 천박함이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종합예술단지로서 예술의 전당은 단순히 음악만을 공연하는 콘서트홀이 아니라 오페라, 연극과 무용 그리고 미술, 서예 등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따라서 음악에 정통하다고 다른 예술 장르까지 탁월할 것이라는 생각은 타 분야 예술가들의 전문성을 무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문화부의 산하기관장 인사를 보면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의 전당 장한나 사장을 비롯해 국립오페라단 단장 박혜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대표 유미정 등의 면면이 예술가 출신 기관장 시대의 막을 올렸다. 외신은 이들의 직책을 'Artistic Director & Chief executive' 즉 '예술과 경영을 모두 책임지는 자리'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평생 무대 위에서 예술적 완성도만을 추구해 온 예술가가 수백 명의 인사 관리, 수백억의 예산 집행, 노사 관계 등 고도의 경영, 행정 전문성을 요구되는 복잡한 행정, 수익 구조 개선, 공공기관 평가 등에 직면했을 때 과연 실질적인 운영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화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국제성을 내세우지만, 기관장의 개인적 명성이 곧 기관의 경쟁력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또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국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기관의 장은 무대에서 빛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뒤에서 예술가들이 빛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조력자여야 한다. 특히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반영하거나 실현하려다가 정작 기관의 공공성과 보편적 서비스 기능을 약화할 위험이 있다.
한 우물 파기
주로 해당 분야 최고의 예술가에게 경영을 맡기는 배경에는 정부와 임명권자의 정치적 계산과 대중적 상징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실있는 경영보다 스타 예술가의 영입이 훨씬 빠르고 화려하게 대중들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명분’ 아래 “예술을 모르는 일반 행정가가 오면 검열이나 간섭할 것”이라는 예술계 주장도 한몫한다. 특히 성공한 또는 유명한 예술인은 예술인들의 고충을 가장 잘 이해하고, 현장 중심의 파격적인 지원이나 기획을 해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각자의 역할이 다름에도 중책을 맡기는 이유이다. 세계 무대에서 활동해 온 예술가들을 임명하는 경우 국제성을 내세우면서 이들의 국제적인 인맥이나 지명도를 활용해 해외 유수 단체와 교류를 활발히 하고, 기관의 국제적 격을 단기간에 높이겠다는 계획인지 모르지만, 이는 기관장을 경영자를 ‘홍보 대사’ 또는 ‘로비스트’로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국제적인 인맥을 동원해 명망 높은 연주자나 단체를 초청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하지만 자체 예산이 없어 기획 공연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민간 공연 기획사에 공연장을 임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큰 수입원인 예술의 전당이 이들의 국제성을 어디에 쓰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예술의전당이나 기타 공연단체 등에 기부한 개인이나 법인은 소득세법 및 법인세법에 따라 지정기부금으로 인정받아 세액 공제나 손금 산입 혜택을 받을 수 있다지만, 주식 등의 기부는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기부금조차 현저히 적은 형편에 이들에게 경영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한국에서 예술경영이 힘을 못 쓰는 것은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기부하면 전체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인하해 주는 영국의 ‘레거시 10’(Legacy 10)법과 ‘소득공제’ 방식을 채택한 미국(50% 공제), 영국(20~45% 공제), 일본(40% 공제) 등에 비해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기부금의 15~40%)’ 방식을 택하고 있어 고소득자의 기부를 유인할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요 선진국에 비해 기부 시 상속, 증여세 면제 한도가 낮아 고액 기부나 기업 기부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인지도와 유명세를 통해 모금 활동을 하라는 것도 억지다.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국립기관의 경우 법으로 기부금의 모금은 물론 기부를 권고하는 일조차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기관장으로 영입해 보았지만, 모금은 물론 영리활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영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 임기 중에 물러난 이도 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의 경영은 정부로부터 얼마나 많은 예산을 받아오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경영자형 기관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두선에 불과하다. 그저 정부예산과 조직 등에 정통한 관료 즉 고위직을 지낸 일반행정직이 문화예술기관의 대표나 사장을 맡았을 때 그나마 경영 실적과 조직안정이 이루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스템상 대학과 대학원에 예술경영학과가 40~50여 개에 이르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31년간 이끌어 온 필립 몬테벨로(Philippe de Montebello, 1936~)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제러드 모르티에(Gerard Mortier, 1943~), 테이트 모던의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1946~) 같은 스타 예술경영자는커녕 일반적인 경영인 양성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특정 장르에서 성공한 유명 예술가를 문화예술의 기관장에 임명하는 것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면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모셨다”라는 강력한 방어막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국제성은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지금 크게 중요한 덕목은 아닐 터이지만 여전히 국제성은 기관장의 중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외국 유학 경험이 ‘국제적’의 기준이라면 그 정도 국제성을 갖춘 이는 대한민국에 널려있다.
본말이 전도된 전문성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예술가나 관련분야 이론가 비평가에게 조직을 맡긴다. 하지만 소위 전문 경영인이 아닌 전문예술가가 조직을 이끌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잘 모르고 흥미도 없는 경영과 행정은 기피하거나, 일반 행정직에게 미루면서 발생한다. 이들은 재정과 예산 확보, 기관의 조직과 인력관리, 시설의 유지보수와 확장이라는 기관장의 핵심 업무는 도외시한 채, 눈에 띄는 일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조직의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고, 인사와 노무 문제 역시 ‘부수적인 일’로 치부하면서 내부 구성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이탈하면서 행정, 관리의 공백으로 인해 조직을 위기로 몰아넣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기관장이 자신이 많이(?) 아는 전공분야에 조언(?)하는 ‘슈퍼 학예사’나 ‘슈퍼 공연기획자’가 되는 순간에도 문제는 발생했다. 수년간 전문성을 바탕으로 준비해 온 학예연구실이나 공연기획팀 기획안은 무시되고, 개인의 인맥이나 취향에 따라 작가와 출연진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본인이 꼭 해야 하지만 할 줄 모르는 일은 미뤄두고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기관의 예술적 분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작품 구입이나 작가, 연주자, 출연자 선정 등을 미주알고주알 지시하면서 심의위원회나 기획회의 같은 공적 절차는 무력화되고, ‘기관장의 하명’이 일상화되면서 조직의 공식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붕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결과 실무진은 전문성을 박탈당한 채 시키는 대로만 하는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관의 윤리규정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친분 있는 화랑의 전속 작가 전시회 개최와 작품 구입, 연이 있는 컬렉터의 소장품 구입, 제자나 지인을 협연자로, 독주자 또는 주인공으로 발탁하는 등의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결국 “바이올린을 잘하니 첼로도 잘할 것”이라는 오해나 “공부를 잘하니 운동도 잘할 것”이라는 착각이 조직 전체를 불협화음 속에 빠뜨린 경우다.
‘이원 체제’라는 국제화
아무리 국제성을 지닌 이라고 해도 시스템이 국제적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세계적인 문화예술기관들이 어떤 시스템을 통해 예술성과 전문성, 국제성을 구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의 체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재편해서 운용해 볼 필요가 있다. 외국의 성공적인 조직 운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문화예술기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영과 예술의 분리’를 제도적으로 구현한 ‘이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구호가 아니라, 예술가와 행정가가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버넌스이다.베를린 필하모니(Berliner Philharmoniker)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The Metropolitan Opera)같은 기관은 대등한 권한을 가진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과 행정경영자(Executive Director 또는 Managing Director)를 두어, 예술적 정체성과 재정적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예술감독은 프로그램 기획과 아티스트 섭외, 예술적 방향성 확립 등 콘텐츠에 집중하고, 경영자는 예산, 인사, 마케팅, 기부금 모금, 노무 관리, 시설 운영을 책임진다. 두 직책의 권한과 책임은 정관이나 규정에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서로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작동한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이원 체제의 정점에 있다.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Chief Conductor & Artistic Director)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 1972~ )는 오케스트라의 예술적 완성도를 책임지고, 재단 책임자(General Manager) 안드레아 지츠슈만(Andrea Zietzschmann, 1970~)은 재정 관리와 마케팅, ‘디지털 콘서트홀’ 같은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한다. 이로써 예술감독은 경영 부담 없이 예술적 완벽함에 몰두하며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유지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시 예술과 경영의 파트너 십을 명확히 보여준다. 소니 클래식 회장 출신의 피터 겔브(Peter Gelb, 1953~)가 총감독으로 경영 혁신을 주도하고, 음악감독 야니크 네제 세갱(Yannick Nézet-Séguin, 1975~)은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예술적 기량을 책임진다. 경영자가 예술의 언어를 이해하면서도 경영의 잣대로 시스템을 혁신한 덕분에,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해야 하는 오페라단이 안정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미술계에서는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나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표적인 이원체체로 성공적으로 미술관을 운영해 온 경우다. MoMA와는 크게 관련 없는 이슬람 미술전공자로 1995년 미술관장에 취임해 30년간 일하고 2025년 은퇴한 글렌 로리(Glenn Lowry, 1954~)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PS1 합병, 미술관의 2차례에 걸친 대규모 확장 및 증축, 여러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소장품 확대 및 약 3000억 원이던 미술관 기금을 약 2조 5253억으로 늘리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경영적 파트너로 MoMA의 예술적 깊이를 함께 끌어올린 핵심 인물로는 후임 관장에 임명된 큐레이터 크리스토프 케릭스(Christophe Cherix, 1969~ )와 존 엘더필드(John Elderfield, 1943~) 등이 있었다. 이들은 오직 연구와 전시 등에 집중하면서 탁월하고 성공적인 전시를 통해 미술관의 명성을 이어 왔다. 또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중동지역의 미술사를 다각도로 연구하기 위해 2009년 설립한 범 부서적 연구 프로그램 ‘근대 및 동시대 미술의 관점(Contemporary and Modern Art Perspectives, C-MAP)’를 통해 미술사의 외연을 넓혔다.
스스로 ‘미술관 경영자’를 자처했던 구겐하임미술관의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s, 1946~)는 전문 큐레이터들과 관장의 역할을 확실하게 분리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학 석사, 예일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한 그는 빌바오 구겐하임 건립 등 글로벌 프랜차이징과 브랜드 전략을 수립했고, 예술적 가치는 각 분관의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에게 맡겼다. 그 결과 구겐하임은 단순한 미술관을 넘어 하나의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성공적인 이원 체제를 위해 ‘이사회(Board)’라는 중요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사회는 단순히 이름만 걸어놓는 자리가 아니라, 재정적 책임을 지고 경영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기구로 기능한다. 예술가가 경영을 망치거나 행정가가 예술을 훼손할 때 이를 중재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독립적 구조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이원체제를 위해서는 예술가의 역할 역시 ‘아이콘’인지 ‘실무자’인지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스타 예술가를 영입할 때 기관이 원하는 것은 그의 경영 능력이 아니라 브랜드 파워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를 행정 실무를 책임지는 기관장으로 앉히기보다, 대외 홍보와 예술적 자문을 맡는 상임 지휘자나 예술감독으로 위촉하고 실제 살림은 전문 행정가가 맡는 구조가 합리적이며 예술가는 예술적 재능이 더욱 크게 성장할 기회가 될 것이다.
뜨거운 가슴, 차거운 머리
결국 해외 문화예술기관들이 보여주는 성공 공식은 명확하다. “무대 위 쏟아지는 빛은 오롯이 예술가의 것이며, 그 빛을 더욱 선명하게 하는 그림자는 이름 없는 경영의 거장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상식이 아니라, 예술과 조직 모두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예술을 경영의 도구로 삼는 순간, 예술은 죽고 조직도 무너진다. 반대로 경영을 예술의 종속물로 취급하는 순간, 조직은 파산하고 예술은 고립된다. 예술과 경영의 분리, 그것이야말로 예술을 지키고 조직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원칙이다. 그리고 이런 상식이 행정 시스템으로 구현될 때, 예술적 가치와 재정적 안정성이 동시에 확보되고, 조직은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의 성공적인 ‘이원 체제’가 가능하려면 정부로부터 예산 지원과 권한은 위임받지만, 운영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준 자율적 비정부 기구(Quango, Quasi Autonomous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하지만 이런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운영을 규율하는 법규와 감사 시스템의 경직성을 우선 제거해야 한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이 영국의 비부처공공기관(NDPB, Non-Departmental Public Body)처럼 완전한 독립체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는 법적, 제도적 제약과 정치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기관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산·인사·경영평가가 중앙부처의 일괄 통제하에 있어 기관별 자율적 운영이 제한된다. 또 정부의 예산지원과 보조금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매출, 효율성 중심의 정량적 평가 체계는 예술적 자율성을 약화하며, 주요 인사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과 정치적인 인사 개입이나 정치권의 논공행상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관행도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 또한 세금 집행에 대한 엄격한 관리 요구라는 사회적 인식이 독립성 확대를 어렵게 만든다. 이를 해결하려면 법제도 개편과 재정 다변화, 인사 투명화 등 포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예술과 경영의 분리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려면 이에 걸맞은 유연한 행정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원 체제는 허울뿐인 구조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예술계가 이러한 행정적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니면 정치적 임명 관행이 더 큰 장애물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이어질 필요가 있다.
예술가가 무대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고, 무대 뒤 운영과 지원은 전문성을 가진 전문경영인이 담당해야 한다는 원칙은 예술과 조직의 존립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예술을 경영 또는 정치의 도구로 삼는 순간, 예술은 죽고 조직도 무너진다. 반대로 경영을 예술의 종속물로 취급하는 순간, 조직은 파산하고 예술은 고립된다. 예술과 경영의 분리, 그것이야말로 예술을 지키고 조직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원칙이다. 결국 성공한 이원체제를 갖춘 문화예술기관의 공통점은 '예술은 신성하되 경영은 냉철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간단하고 합리적인 것이 우린 왜 안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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