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시선은 테헤란과 워싱턴DC, 그리고 텔아비브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전쟁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번 충돌의 또 다른 변수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라크다. 겉으로는 공습의 포화에 살짝 비켜나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라크는 전장의 논리가 가장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종전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적 요인으로 주목받아야 한다.
사실 이라크의 취약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면서 수니 소수파가 시아 다수파와 쿠르드 소수민족을 통제하던 불안한 균형이 깨지고 국가는 급속히 해체되었다. 이후 이라크는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시아파의 주도로 다른 종파 및 민족과 새로운 정치 질서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2011년 미군의 철수로 생긴 이라크 내 힘의 공백과 아랍 민중의 봉기로 발생한 시리아 내전은 2014년 이슬람국가(IS)의 등장과 영토 장악이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현상으로 진화했다. IS가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최대 거점으로 삼고 시리아 라카를 수도로 선포하면서 바그다드에서 테러가 난무하는 등 이라크의 취약성은 극단적인 형태로 지속되었다. 미국 주도의 군사 개입과 국제 공조를 통해 IS는 격퇴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수많은 무장세력은 국가의 통제 아래 완전히 흡수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라크는 국가는 존재하지만 폭력의 독점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민동원군(Popular Mobilization Forces·PMF)이다. PMF는 다양한 친이란 민병대가 느슨하게 결합해 있는 준군사조직으로, 2016년 공식적으로는 총리 산하 조직으로서 통합되었지만 실제로는 독자적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에도 깊숙이 진출해 있으며 경제 부문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와 더불어 IS는 2017년 격퇴 선언 이후에도 소규모 테러와 게릴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근 몇 년간 이라크는 과거보다 진일보한 안정된 조짐을 보였다.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 총리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친이란 성향이지만 이라크 우선(Iraq First) 기조를 내세우며 정부가 극단적인 친이란 기조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했다. 쿠르드계 대통령, 시아파 총리, 수니파 국회의장으로 대표되는 쿠르드, 시아파, 수니파 간 권력분점 구조도 불완전하지만 작동하고 있었다. 특히 광범위한 자치권을 획득한 쿠르디스탄 지역 정부는 자치를 유지하면서도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일정 부분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바그다드는 안정과 회복세를 보이는 도시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이처럼 어렵게 유지되던 균형을 빠르게 흔들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무장세력의 움직임이다. PMF와는 연계가 느슨한 친이란 민병대들은 이미 이란을 지원하는 형태로 전쟁에 개입하고 있으며 드론과 미사일을 활용해 이라크 내 미군 기지와 외교시설, 에너지 인프라 등을 공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그다드 정부는 모든 분쟁은 외교적 경로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하며 이라크는 전쟁에 절대로 휘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군사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시선은 점점 더 이라크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민병대 거점과 지휘부를 겨냥한 정밀 타격을 하는 등 제한적이지만 분명한 대응을 했다. 이는 확전을 피하면서도 억지력을 유지하려는 계산된 행동이다.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역내 네트워크를 차단하기 위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간헐적으로 타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라크는 공식적인 전쟁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실상 그림자 전쟁이 전개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또 다른 불안정 요인은 쿠르드 지역이다. 쿠르디스탄 지역 정부는 여전히 높은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방과 협력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는 바그다드로 하여금 지속적인 경계심을 갖게 하는 요소다. 전쟁 상황에서 에르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이라크 내부 균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시에 쿠르드 세력 역시 민병대의 공격에 대응해 독자적 군사행동을 고려할 수 있어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상황은 심각하다. 이라크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유 수출은 바스라 남부 항구를 통한 해상 운송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걸프 지역 긴장과 인프라 피해가 곧바로 국가 재정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이란의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전력 생산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안보 불안이 경제 위기로 전이되고 이는 다시 정치적 불안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이라크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민병대를 제어하지 못하면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더욱 강해질 것이고, 이는 다시 주권 침해 논란과 내부 반발을 키운다. 반대로 강경하게 대응하면 정치적으로 강력한 기반을 가진 민병대와 충돌하면서 내전 수준의 갈등이 촉발될 위험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안정은 보장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이라크의 불안정한 상황이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라크는 이번 전쟁의 주 무대는 아니지만 통제되지 않는 긴장을 계속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군사적 충돌과 전쟁의 동력을 유지하는 구조적 변수로 작용하여 전쟁을 끝내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제사회와 한국 역시 이러한 현실을 더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의 불안정은 단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중동 전체의 질서와 에너지 시장, 그리고 글로벌 안보 환경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전쟁은 하나의 전선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전선, 이라크에서의 균열이 이 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선임연구위원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한러대화(KRD) 경제통상분과 위원장 ▷산업통상부 통상협정대책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전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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