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AI 거품인가, 산업혁명인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경고와 인공지능 경제의 현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단어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AI 투자 열풍은 뉴욕 금융시장을 거쳐 전 세계 자본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산업은 물론 거의 모든 산업이 AI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AI 관련 기업의 시가총액은 폭등하고, 글로벌 자본은 앞다투어 AI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열기를 두고 냉정한 경고를 던진 경제학자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네번째이 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AI 국민비서 시범서비스 개통식에서 정신아 카카오 대표왼쪽 세번째와 최수연 네이버 대표오른쪽 세번째를 포함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네번째)이 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AI 국민비서 시범서비스 개통식에서 정신아 카카오 대표(왼쪽 세번째)와 최수연 네이버 대표(오른쪽 세번째)를 포함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경제는 AI 투자, 즉 ‘AI 거품’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이 AI 관련 투자와 활동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면서, 지금의 AI 투자 열풍이 단기적으로는 경기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거품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스티글리츠라는 경제학자의 무게 때문이다. 그는 2001년 정보 비대칭 이론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세계은행(World Bank)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불평등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대표적 학자로, 오늘날 경제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히 AI 산업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 혁명의 역사에서 반복돼 온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핵심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지금의 AI 투자 열풍은 기술 자체보다 기대가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경제에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데이터센터 투자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 증가는 미국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의 기대가 현실보다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다고 본다.



현재 자본시장은 AI 기업들이 장기간 막대한 초과이익을 독점할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런 가정이 현실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유는 경쟁이다.

AI 산업은 특정 기업이 독점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까지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오픈소스 기술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술 장벽은 높지만 동시에 확산 속도 역시 빠르다.



그는 “기술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경쟁이 심화하면 이익이 거의 남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AI 산업이 성장하더라도 기업의 수익성이 기대만큼 높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사적으로 보면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철도 산업, 자동차 산업, 인터넷 산업 등 대부분의 기술 혁명은 초기에 과도한 투자와 거품을 동반했다. 기술은 인류 문명을 바꿨지만 초기 투자자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기업이 사라졌고 극소수 기업만 살아남았다.



인터넷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시기에는 인터넷 기업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러나 거품이 꺼진 뒤 대부분의 기업이 사라졌고, 이후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극소수 기업만 살아남아 시장을 지배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금의 AI 투자 열풍에서도 비슷한 위험을 보고 있는 것이다.



AI에 대한 또 하나의 논쟁은 일자리 문제다.

많은 미래학자와 기술 기업들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사무직과 전문직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 전망 역시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본다. AI가 연구·분석·행정 같은 정형화된 사무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중요한 분야는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육이다. 그는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교육에서 핵심은 인간 간 상호작용”이라고 강조한다. 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 관계를 형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의료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진단 보조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의료 시스템의 근본적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지대 추구, 경쟁 부족, 공공의료 체계 부재 같은 정치·제도적 요인에서 찾는다. 의료비 상승이나 의료 서비스 비효율성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제도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이런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대목은 기술 낙관주의가 놓치기 쉬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기술 발전이 자동으로 사회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혁명도 마찬가지였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노동자들의 삶이 개선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동권과 사회보장 제도가 만들어지고 나서야 산업혁명의 성과가 사회 전체로 확산됐다.



AI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기술 혁신이 불평등을 더 확대하지는 않을 것인가. 그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떤 제도를 준비해야 하는가.

스티글리츠 교수는 기술 자체보다 이 문제를 더 중요하게 본다.



지금 세계는 또 하나의 거대한 기술 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인공지능은 분명 산업 구조와 경제 시스템을 바꿀 것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생산의 핵심 요소가 되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모든 기술 혁명에는 과도한 기대와 투자 열풍이 함께 등장했다. 철도, 전기, 인터넷, 스마트폰까지 모든 기술 혁명에는 거품의 순간이 있었다.

거품이 꺼진 뒤에도 기술은 살아남았고 결국 산업 구조를 바꿨다.



스티글리츠의 경고는 바로 이 지점을 향한다.

AI가 거품일 수 있다는 말은 AI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경제와 사회의 제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AI가 진짜 산업혁명이 되느냐, 아니면 또 하나의 투자 거품으로 끝나느냐.


그 답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선택, 그리고 경제와 정치의 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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