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증시는 그야말로 ‘검은 화요일’이었다. 코스피는 452.22포인트(7.24%) 급락한 5,791.91로 마감했다. 낙폭 기준 사상 최대다. 코스닥도 4.62% 밀렸다. 외국인은 하루에만 5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고, 원/달러 환율은 26.4원 급등한 1,466.1원으로 치솟았다. 11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한국형 공포지수(VKOSPI)는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다.
시장은 전쟁에 놀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쟁 자체에 반응한 것이 아니다.
시장이 계산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유가’다.
유가는 이미 반응했다. 브렌트유는 연초 60달러대에서 80달러선을 넘어섰다. 중요한 것은 숫자 그 자체보다 ‘지속 기간’이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0.22%포인트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도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경우 아시아 국가들의 성장률이 0.2~0.3%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유가 상승이 몇 주에 그치면 충격이지만, 몇 달 이어지면 체질 변화다.
채권시장도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3년물과 10년물 국채금리가 나란히 10bp 이상 급등했고, 미국 10년물도 다시 4%를 넘어섰다. 안전자산 선호 국면에서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재점화’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단기적으로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메리츠증권 이승훈 연구원은 “채권시장은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반영하며 매도에 나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경로는 명확하다. 유가 상승 → 물가 기대 상승 → 금리 인하 지연 → 환율 불안 → 주가 조정.
이번 급락은 그 연결고리가 한 번에 작동한 결과다. 특히 원화 약세는 외국인 자금 이탈을 가속화한다. 실제로 코스피 낙폭은 일본·중국보다 컸다. 단순한 동조화 하락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에너지 노출 리스크가 반영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2년 랠리의 종착역일까.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2000년 이후 주요 중동 분쟁 여섯 차례에서 코스피는 한 달 뒤 모두 플러스였다. 초기 충격은 컸지만, 에너지 공급이 장기 차질로 이어지지 않으면 시장은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허준영 서강대 교수는 “과거에는 긴장이 고조됐지만 전면전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이란 내부 정치 상황이 변수다. 시장이 가정하는 2~4주 내 진정 시나리오가 어긋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중전만으로 분쟁이 끝난 사례는 드물다”며 확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시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공황이라기보다는 재편에 가깝다. 방산주는 급등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하루 만에 19% 넘게 뛰었고,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은 30% 가까이 올랐다. 정유주 역시 강세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0% 안팎 급락했다. 이는 전면 붕괴가 아니라 섹터 간 이동이다. 유가 수혜주와 방산주는 재평가, 고밸류 성장주는 차익 실현이다.
반도체 업황이라는 기초 체력도 무시하기 어렵다. 선행 EPS는 연초 대비 10%가량 상향 조정됐고, 코스피는 여전히 10배 초반의 PER에 거래되고 있다. 2월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29% 증가했다. 이익 추정치가 유지되는 한, 지정학 리스크는 일시적 소음에 그칠 수 있다는 논리다.
문제는 시간이다. 한국은 정부 비축유와 민간 재고를 합쳐 200일 이상 버틸 수 있다. 단기 충격은 흡수 가능하다. 그러나 호르무즈 봉쇄가 길어지고 유가가 고점에서 고착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되살아나고, 글로벌 금리 인하 시계가 늦춰지면 밸류에이션 부담이 본격화될 수 있다.
시장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충격인가, 전환인가.
전쟁 뉴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지만, 시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유가의 방향과 지속성’이다. 유가가 안정되고 금리 기대가 복원된다면 이번 급락은 또 하나의 과잉 반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고착된다면, 지난 2년간 이어진 상승장은 처음으로 진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번 발작이 단기 경련으로 끝날지, 추세의 균열로 이어질지는 전장의 속도가 아니라 유가의 시간표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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