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BTS아리랑에서 K-헤리티지 글로벌로] ⑭ 아리랑의 힘은 저항이 아니라 반복에 있다

아리랑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설명은 ‘저항의 노래’다. 일제강점기의 아픔, 민중의 한, 억압에 맞선 감정이 아리랑에 담겼다는 해석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아리랑이 왜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았는지, 왜 BTS 이후 다시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아리랑의 힘은 저항에 있지 않다. 반복에 있다. 저항은 순간을 만든다. 분명한 적과 명확한 구도가 있을 때, 저항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휘한다. 그러나 저항은 지속되기 어렵다. 상황이 바뀌면 맥락을 잃고,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해지기 힘들다. 반면 반복은 시간을 만든다. 같은 감정이 다른 상황에서 다시 호출되고, 조금씩 다른 언어로 되풀이되며 세대를 건넌다. 아리랑이 살아남은 이유는 저항의 상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리듬으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특정 사건을 노래하지 않는다. 영웅도, 명확한 적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별과 이동, 상실과 재회의 감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 이 감정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전쟁의 시대에도, 산업화의 시대에도, 이주와 경쟁이 일상이 된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그래서 아리랑은 매번 다른 이유로 불렸고, 매번 다른 의미를 얻었다. 반복은 동일함이 아니라 재접속이었다.

BTS의 ‘아리랑’이 세계와 만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아리랑을 저항의 서사로 재현하지 않았다. 역사적 상처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반복되는 감정의 구조를 현재의 언어로 다시 울리게 했다. 불안, 연대, 상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감정. 세계는 이 감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한국의 리듬으로 다시 만났을 뿐이다. 반복은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경험을 호출할 뿐이다.

이 점에서 아리랑은 ‘완성된 노래’가 아니라 ‘열린 구조’다. 정본이 없고, 지역마다 가사가 다르며, 상황에 따라 속도와 음색이 달라진다. 이 유연성이 반복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아리랑이 하나의 정답으로 고정돼 있었다면, 저항의 상징으로 박제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리랑은 고정되지 않았기에 계속 불릴 수 있었다. 반복은 보존보다 강하다.

K-헤리티지 논의가 종종 길을 잃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 우리는 전통을 ‘의미가 분명한 메시지’로 만들려 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가치를 전하는지를 명확히 하려 한다. 그러나 메시지가 선명해질수록 반복은 어려워진다. 특정한 주장에 묶인 문화는 그 주장과 함께 소멸한다. 반면 반복 가능한 문화는 해석을 열어둔다. 누군가는 저항으로, 누군가는 위로로, 누군가는 추억으로 다시 부른다. 이 느슨함이 오히려 생명력이다.

저항의 문화는 기념비를 남기지만, 반복의 문화는 습관을 만든다. 기념비는 바라보게 하지만, 습관은 몸에 남는다. 아리랑은 기념비가 아니라 습관에 가까웠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불렸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았다. BTS 이후 아리랑이 다시 울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노래가 이미 수많은 반복을 통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반복의 힘은 K-헤리티지의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전통을 한 번 크게 보여주는 이벤트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계속 다시 쓰이게 할 것인가. 축제와 전시는 끝나지만, 반복은 남는다. 문화 정책의 성패는 화제성보다 반복 가능성에서 갈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접속할 수 있는가, 다른 맥락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아리랑은 저항의 노래였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저항을 넘어, 삶의 감정으로 반복될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BTS의 ‘아리랑’은 이 오래된 구조를 현대의 무대 위로 끌어올린 사례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는 이 반복을 구조로 만들 준비가 돼 있는가.

 
유엔본부 앞에 선 BTS 사진하이브
유엔본부 앞에 선 BTS [사진=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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