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 인사이트 2 | 진리 정의 자유] 제조·IT·속도의 힘, 그리고 인도 AI 정상회의 — 피지컬 AI 시대, 아시아의 결단과 한국의 책임

16일 개막한 '인도 AI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 행사나 외교 일정이 아니다. 그것은 21세기 산업 질서의 향방을 가르는 전략적 분기점이며,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되는 세계 권력 구조 속에서 아시아가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다.

선언과 수사는 넘쳐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산업 역량과 실행력이다. 기술은 중립일 수 있으나, 기술을 둘러싼 선택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강점은 분명하다. 첫째는 제조업 인프라다. 196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을 토대로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산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조 업종을 경험해 왔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산업화의 시간은 단순한 성장의 연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실패와 교훈, 품질 개선과 공정 혁신, 글로벌 경쟁 속에서 단련된 숙련의 역사다. 60~70년에 걸쳐 축적된 생산 데이터와 공정 노하우는 피지컬 AI 시대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공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마트 팩토리는 구현될 수 없고, 제조 현장의 맥락을 모르면 산업용 로봇은 껍데기에 그친다. 제조 경험은 알고리즘을 현실과 연결하는 토대다.

둘째는 IT 인프라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정보통신망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했다. 전국 단위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 네트워크는 디지털 전환의 토대를 구축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연결된 네트워크는 데이터 경제의 전제가 되었고, 전 국민적 디지털 활용 능력은 산업과 행정의 효율을 높였다. 인공지능은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한다. 로봇과 자율 시스템, 스마트 물류와 원격 의료, 지능형 도시 관리 체계는 고도화된 통신 환경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한국은 이미 전국이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실험장이 된 나라다.

셋째는 실행의 속도다. 흔히 '빨리빨리'로 표현되는 문화는 단순한 성급함이 아니다. 그것은 위기와 전환의 시기에 발휘된 집단적 실행력이다. 반도체 산업의 고도화, 스마트폰의 글로벌 확산, 배터리 산업의 급성장은 의사결정과 투자, 연구개발이 빠르게 맞물린 결과다. 기술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AI 시대에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뒤늦은 합의와 지체된 집행은 기회를 잃는 다른 이름이다.

이 세 가지 강점은 인도에서 열리고 있는 AI 정상회의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AI 정상회의는 1회가 영국에서 열렸고, 2회는 한국, 3회는 프랑스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4회가 인도에서 열리고 있다. 영국은 AI 안전성과 규범의 틀을 제시했고, 한국은 산업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상용화 모델을 보여주었으며, 프랑스는 유럽 차원의 규제와 윤리 기준을 정교화했다.

이제 인도는 거대한 인구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참여를 확대하려 한다. 회의의 순서는 곧 세계 기술 담론이 이동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 오늘의 AI 경쟁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거대 플랫폼 기업과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전략 차원의 투자와 방대한 데이터, 탄탄한 제조 기반을 토대로 병행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양강 체제 속에서 아시아의 다수 국가는 다시 주변화될 위험에 놓여 있다. 과거 산업혁명기에 기술 표준을 타자가 정하고 우리는 수용자로 남았던 경험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주도적 행위자로 나설 것인가.

특히 피지컬 AI는 새로운 변곡점이다. 이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경쟁이 아니다.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국방 장비, 물류 시스템, 의료 기기 등 물리적 장치와 결합해 생산성과 안전, 효율을 재편하는 기술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하드웨어 설계 능력, 센서 기술, 공정 데이터, 제조 현장의 이해가 결합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아시아 내부에서 보기 드문 종합 역량을 지닌 국가다.

예컨대 현대자동차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중심으로 이동성과 지능을 결합한 로봇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자동차 제조에서 축적된 구동 기술과 제어 시스템, 센서 융합 능력은 휴머노이드 개발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동 수단을 만들던 기업이 '움직이는 지능'을 만드는 기업으로 확장되는 과정은 피지컬 AI 시대의 상징적 장면이다.

로봇은 더 이상 전시용 시제품이 아니라 산업 현장과 물류, 재난 대응, 나아가 가정으로 확산되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도 축적은 이어진다. 한국과학기술원(KIST)은 산업용 및 가정형 로봇 기술을 고도화하며 KAPAX, 이른바 K-팍스와 같은 가사형 로봇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가정형 로봇은 돌봄과 복지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 기기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장치다. 기술 혁신이 산업 경쟁력을 넘어 사회 문제 해결과 직결되는 지점이다.

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잠재력은 충분하다. 인도는 세계 최대 인구와 방대한 소프트웨어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동남아는 젊은 노동력과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시장을 갖고 있으며, 일본은 정밀 제조와 로봇 공학의 깊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분절이다. 각국이 따로 움직인다면 미국과 중국이 정한 표준을 따르는 하위 시장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과 인도의 협력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역량과 거대 시장, 한국의 제조 경험과 하드웨어 기술이 결합한다면 피지컬 AI 분야에서 상호 보완적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공동 연구센터 설립, 로봇 테스트베드 구축, 인력 교류 확대, 표준 협력은 구체적 과제다. 아시아 내부에서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외부 플랫폼의 소비자로 남게 될 것이다.

전제는 분명하다. 기본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책, 예측 가능한 법·제도, 윤리와 안전 기준의 확립이 병행되어야 한다. 혁신을 억누르는 과도한 규제도, 책임을 외면하는 방임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아시아는 오랜 시간 추격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전환점 앞에서 다시 주저할 이유는 없다. 제조의 힘, 디지털 인프라, 실행의 속도를 갖춘 한국은 아시아의 AI 선도 국가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인도 AI 정상회의는 그 결단의 출발점이다. 선언을 넘어 실행으로 이어질 때, 아시아는 비로소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뉴델리 EPA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1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AI 임팩트 엑스포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델리 EPA=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AI 임팩트 엑스포'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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