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노조의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 반대를 두고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사실에 가깝다. 인공지능(AI)과 로봇에 기반한 자동화는 선택지가 아니라 경로다. 이를 정치적 선언이나 노사 갈등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도입 여부가 아니라, 전환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기업이 로봇을 도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건비 절감, 생산성 향상, 불확실성 축소다. 이 경제적 유인이 사라지는 순간 자동화는 늦춰지거나 해외로 이동한다. 따라서 “기업도 전환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요구는 도덕적으로는 타당하지만, 그대로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자동화의 이익보다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구조라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해법은 부담의 강요가 아니라 인센티브의 재설계다. 재교육과 직무 전환, 소득 안전망을 기업의 직접 비용으로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세제 감면·전환 크레딧·공공 재교육 기금 매칭 등으로 사회적 비용을 분산시켜야 한다. 자동화를 해도 이익이 남는 구조, 동시에 전환의 충격은 사회가 흡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이것이 시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시장의 부작용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또 하나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재교육·직무 전환과 기본사회는 같은 해법이 아니다. 전자는 노동 중심 사회를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려는 전략이고, 후자는 노동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시대를 전제로 한 안전망이다. 두 접근은 병렬적으로 나열될 수는 있어도, 혼용돼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재교육과 전환으로 충격을 완화하되,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으로 소득을 얻는 질서’가 축소될 가능성까지 인정하고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방향 없는 병행은 정책 혼란만 키운다.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 전환”이라는 표현 역시 정밀할 필요가 있다. 일부 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 노동을 보완하지 않고 대체한다. 완전 자동화 공정에서 ‘공존’을 강제하는 것은 효율의 포기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공정에 사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인간의 역할과 소득 기반이 붕괴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기술의 속도를 늦추는 대신, 충격을 흡수하는 제도를 앞당기는 선택이 더 현실적이다.
완전 자동화 공장이 사회적으로 수용 불가능하다는 단정도 경계해야 한다. 생산비 절감이 물가 하락과 소비자 후생 증가로 이어진다면, 사회 다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다. 노동자의 불안은 현실이지만, 사회는 노동자이자 소비자로 구성돼 있다. 정책은 이 복합적 이해관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이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노동을 지키기 위해 효율을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효율을 받아들이되 노동 감소의 비용을 사회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비용은 발생한다. 차이는 그 비용을 방치하느냐, 제도화하느냐다.
로봇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방치된 전환은 갈등을 낳고, 설계된 전환은 질서를 만든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대가를 어떻게 나눌지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술 낙관도, 기술 공포도 아닌, 기본과 상식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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