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 칼럼] 고환율, 서학개미는 죄가 없다

  • '와타나베 부인'의 일본 사례 배워야

서정희
[서정희 고문]


이재명 정부 출범 당시(2025년 6월 초)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360원 수준이었다. 이 환율이 작년 11월에는 1470원대, 12월에는 1480원대까지 올라갔다. 최근 몇 주간 1440원대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환율이 부동산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최대 복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고환율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의 환율 흐름을 살펴보라. 윤 정부 내내 고환율이 지속됐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이재명 정부 들어 환율 급등과 외환위기 불안감이 우리 경제를 덮친 것일까.

환율 상승의 배경으로는 몇 가지 요인이 지목되고 있다. 한·미 간 금리 역전,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으로 인한 통화량 증가, 수출 부진 지속,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이재명 정부 출범에 따른 요인은 뭘까.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와 이에 따른 한·미 금리 역전은 이미 윤석열 정부 때 벌어진 일이다. 수출 부진도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으로 인한 통화량 증가도 출범 6개월 지난 정부에 책임을 돌리기에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일각에서는 서학개미들의 해외 주식투자를 원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과연 그럴까. 이재명 정부 들어 코스피 지수가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판이다. 그러니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남은 요인은 한 가지다. 정치경제적 불안 요인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 저하 아닐까.

그럼, 지금 환율 수준이 정말 위험 수준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갖고 있는 달러 순자산은 총 1조3000억 달러에 달한다.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이상에다 대외 달러 순자산이 9000억 달러 넘는다. 여기에는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투자 자산이 포함된다. 달러를 못 구해 허둥대던 1997~1998년 분위기와는 천양지차다. 적어도 외환유동성으로 인한 외환위기 가능성은 현재로선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따지고 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에 큰 이상 시그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되기 전부터 미국 달러 가치는 이미 분명한 강세 기조를 띠고 있었다. 유로화, 엔화 등 세계 모든 화폐에 대해 달러가 강세를 보인 지 오래다. 물론 작년 말 1400원대 초중반에서 갑자기 1400원대 후반을 넘어 1500원을 넘보았던 것은 문제가 있다. 소위 오버슈팅(overshooting)이다. 작은 변화나 변수에 시장과 플레이어들이 과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가격 변수가 크게 출렁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단기 대응 실패 탓이 크다.

필자가 생각하는 환율 관리 실패의 원인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경제적 요인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경제 상황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세력의 반발이 내재해 있다는 뜻이다. 이 정부의 정책 방향이 기본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 원화 약세에 베팅하는 입장이 강하다. 환율 상승에 대한 언론들의 차분하지 못한 보도, 국내 달러 예금 계좌의 잔액 증가 등을 보면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 당국의 불안정성이다. 특히 F4로 지칭되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금융감독원 원장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없지 않다. 전문성도 떨어지고 협조체제도 약해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나머지 셋은 국제금융 쪽 경험이 없고 비전문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디선가 흔들어 대는 힘이 작동하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내놓는 단기 대책마다 약발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 서학개미 논란, 국민연금 헤지 문제, 수출 대기업 달러 매도 압박 등 설익은 대책으로 실탄만 쏟아붓고 있다. 외환당국(Autority)은 무엇보다 영(令)이 중요하다. 소위 말발이 서면 실탄을 쏠 필요도 없다.

세 번째는 중장기적 요인이다. 이쯤에서 우리보다 앞선 경험이 있는 일본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서학개미에 비유될 수 있는 일본의 투자 주체로 소위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 4월 1일 일본에서는 외환관리법이 신외환법(신외환·무역관리법, Foreign Exchange and Foreign Trade Control Law)으로 개정되면서 개인의 대외 투자가 봇물을 이뤘다. 외환거래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자본거래를 자유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도 '와타나베 부인'의 ‘엔캐리 트레이드’로 인해 엔화 약세가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달랐던 것은 당시 일본에서는 이로 인한 순기능도 나타났다는 점이다. 일본 엔화의 국제화 및 국제 시장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엔화 가치의 변동 폭이 크게 줄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엔화 채권은 물론 엔화 현물과 선물이 뉴욕이나 런던 시장에서 실시간 거래되자 시장 출렁임이 크게 낮아졌고, 엔케리 투자에 대한 수익이 확대될 때는 엔화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금융의 국제화 흐름 속에 서학개미의 해외 투자를 막을 길은 없다. 그렇다면 일본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도 외환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 혹은 폐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학개미 투자가 제대로 시장을 형성하고 외환시장에 순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 이게 원화 국제화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아직 암담하다. 세계 28개국이나 하고 있는 교환가능(convertible) 통화에도 끼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강제로 열린 일부 외환시장 개방 외에는 지난 30년 가까이 빗장을 전혀 열지 않고 있다. 아마도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외환당국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여다보지 않고는 밤잠을 못 자겠다는 식이다. 이러니 시장만 이상하게 기형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역외선물환(NDF) 시장의 비대화가 단적인 사례다. 제대로 된 시장을 놔두고 아무도 없는 억지 놀이터에 외환시장을 가둬 놓은 꼴이다. 이 문제는 코스피 5000과도 직결된다. 코스피 5000의 마지막 장애물인 MSCI 지수 편입 실패의 이유는 단 하나다. 외환시장의 후진성인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매경TV·매경출판 대표,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등 ▷서울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연우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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