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정몽구 명예회장, 책임의 범위를 넓힌 기업가정신

  • ―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서 현대차 헤리티지까지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오늘까지 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초 재개발로 사라질 가능성이 컸던 이 공간은 정 명예회장의 문제 제기와 조율을 거치며 보존의 길을 찾았다. 요란한 외교도, 앞에 나서는 행동도 없었다. 다만 결과가 남았다. 건물은 남았고, 역사는 이어졌다.
 
중국 상하이 도심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의 출발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도시 개발이라는 합법적이고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 건물이 예외로 남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 “보존해야 한다”고 외쳤기 때문이 아니라, 보존이 가능해지는 조건을 만드는 선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의 판단은 개발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개발의 논리 속에서 역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해법을 찾는 데 있었다.
 
그가 이 사안을 바라본 시각은 분명했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중국 측에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한국의 독립혼과 책임의 출발을 상징하는 장소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민족적·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임시정부청사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민의 깊은 관심을 감안해 한국이 재개발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감정에 호소하지도, 과거를 앞세워 압박하지도 않았다. 국제도시 상하이의 개발 논리 안에서, 한국의 역사와 책임이 존중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기업가정신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업가정신은 흔히 혁신이나 성장으로 설명되지만, 필자가 연구해온 관점에서 보면 본질은 다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이후, 기업이 무엇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능력이 성숙한 기업가정신이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보존은 그 책임의 범위가 산업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역사로 확장된 사례다.
 
정 명예회장의 경영 궤적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는 현대차를 단기간에 키운 경영자라기보다,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든 경영자에 가깝다. 실적 압박이 거셀 때도 품질 기준을 먼저 세웠고, 비용이 들더라도 공정과 시스템을 개선하는 쪽을 택했다. 당장은 부담처럼 보였던 선택들이 시간이 지나며 신뢰로 축적됐고, 그 신뢰가 현대차를 글로벌 무대에 정착시켰다. 성장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설계라는 점을 그의 경영은 보여준다.
 
이 판단의 성격은 스포츠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온 배경에는 정 명예회장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다. 그는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대신 훈련 환경, 장비 개발, 데이터 분석, 지도자 육성 같은 보이지 않는 기반에 투자했다.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계속 이길 것인가”를 묻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시간이 지나 시스템으로 증명됐다.
 
해외 기업의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 이후 비용 부담을 감수하며 품질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세웠고, 보쉬는 단기 수익보다 기술과 인재 축적을 우선해 100년 기업의 길을 이어왔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생존 이후, 책임의 범위를 넓히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이제 이 흐름은 다음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현대차의 헤리티지를 재정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니, 갤로퍼, 봉고를 다시 호명하는 작업은 단순한 추억 사업이 아니다.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으로서 어떤 책임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국가 보훈 사업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참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독립유공자 지원,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보존에 이르는 민간외교 활동은 기업의 사회공헌을 넘어, 기업이 역사 앞에서 감당할 책임의 범위를 넓혀온 과정이다.
기업도 국가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면,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현대차의 헤리티지는 다시 불리고, 한국 양궁은 여전히 세계의 기준으로 남아 있다.
 
그 장면들 사이에서 우리는 한 기업의 성장사가 아니라, 생존 이후 책임의 범위를 스스로 확장해온 정몽구 명예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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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트북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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