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경쟁이 아니라 리더십 경쟁
지금 현대차가 상대해야 할 경쟁자는 더 이상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다. 테슬라, 구글(웨이모), 애플이다. 이들은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데이터를 축적하고 소프트웨어로 진화하는 기업들이다. 자동차를 ‘기계’가 아닌 ‘움직이는 플랫폼’으로 재정의한 세력이다. 이 전환의 본질을 오해하는 순간, 경쟁은 이미 끝난다. 경쟁자는 이미 자동차 산업 밖에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로 “10년 후를 말하면서 오늘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꼽았다. 그는 늘 미래를 30년 단위로 상정했고, 그 미래가 보이면 조직의 망설임과 타협하지 않았다.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올라타지 않으면 놓쳐버릴 파도라는 판단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합의의 리더는 아니었다. 애플의 결정은 언제나 내부 반발과 충돌 속에서 이뤄졌다. 위원회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고, 집단적 합의는 혁신을 낳지 못했다. 잡스는 타협 대신 강행을 택했고, 그 선택이 애플을 ‘추격자’가 아닌 ‘규칙 제정자’로 만들었다. 이 글로벌 경영자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조언은 들었지만, 결정을 나누지는 않았다.
· 결단 대신 선택된 시간 끌기
지금 현대차 내부를 지배하는 언어는 “리스크 관리”, “브랜드 보호”, “안전이 우선”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자율주행 경쟁의 현시점에서는 이 말들이 지연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율주행은 완성도를 겨루는 경쟁이 아니다. 데이터의 양과 실전 주행의 시간, 그리고 플랫폼을 먼저 차지하느냐의 문제다. 한발 늦는 순간, 그 격차는 기술력만으로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대차 내부에서는 자율주행이 여전히 ‘미래의 연구개발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신중함이라기보다, 책임을 뒤로 미루는 태도에 가깝다. 신중함은 전략이 아니라 변명일 수 있다.
· 최종 책임은 회장의 판단에
한국 기업사는 이미 답을 보여줬다. 삼성의 스마트폰 도약은 임원들의 합의가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단호한 결단과 속도전에서 시작됐다. 반대로 LG전자의 실패는 “조금 더 지켜보자”는 집단적 신중함에서 출발했다. 지금 현대차의 모습은 성공 직전의 삼성보다는, 실패 직전의 LG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제 정의선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선언이고, 조율이 아니라 결정이며, 합의가 아니라 책임지는 결단이다. 자율주행 조직은 기존 사업부의 논리에서 분리돼야 한다. 외부 기술과의 협력과 도입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용인하되, 지연은 용서해서는 안 된다. “안전”을 말하는 만큼, 그 두 배의 속도를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조직 내부에 쌓여온 안일한 판단이다. “회장님을 위해서”라는 말은 언제나 가장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대기업의 위기는 늘 그런 말들 속에서 조용히 시작됐다.
테슬라는 현대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구글은 한국식 의사결정 속도를 고려하지 않는다. 애플은 기존 산업의 논리를 존중한 적이 없다.
이 싸움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속도와 결단, 그리고 고독한 리더십의 문제다. 자율주행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은 가장 준비된 기업이 아니라, 가장 먼저 움직인 기업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지금 이 순간, 오롯이 정의선 회장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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