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발표로부터 1년. 지금 통의동의 공기는 다시 평소로 돌아왔다. 줄은 사라졌고, 서촌 특유의 고요함이 자리를 되찾았다. 환호는 본래 빨리 식는 법이지만, 그 속도가 유난히 빠를 때 우리는 종종 민망해진다. 문학이 ‘사건’처럼 소비될 때, 사건이 지나간 뒤 문학은 어디에 남는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1년을 체감하기에 통의동만큼 적절한 장소도 드물다.
‘책방 오늘’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통의동 백송터가 나온다. 이곳은 한때 천연기념물 제4호 ‘서울 통의동의 백송’이 서 있던 자리다. 백송은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1990년 7월 폭우를 동반한 돌풍으로 쓰러졌고, 결국 1993년 3월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됐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고사목의 거대한 둥치와 그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후계목 몇 그루다. 설명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공간이지만, 이 작은 터는 서울의 시간을 응축해 보여준다.
백송터가 품은 이야기는 ‘나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창의궁(영조가 연잉군 시절 거처로 삼았던 곳)과도 겹쳐 읽히며, 시대의 층위를 덧씌운다. 일제강점기에는 주거와 소유의 질서가 재편되며 또 다른 얼굴을 가졌다. 골목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 백송의 ‘부재’를 오히려 더 또렷하게 만든다. 살아 있을 때는 보호의 대상이었고, 쓰러진 뒤에는 ‘자리’만 남았다. 그 자리는 지금도 도심 한복판에서 말없이 시간을 증언한다.
그래서 통의동은 더욱 상징적이다. 한쪽에서는 세계적 수상이 촉발한 문학의 열기가 골목을 흔들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쓰러진 천연기념물의 자리와 후계목이 묵묵히 자라고 있다.
열기는 순간적으로 뜨겁지만, 자리와 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열기를 다루는 방식이다. 냄비가 끓듯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쉬이 사라지는 문학과 역사 열풍으로는 문화 선진국을 자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떠받치기 어렵다. 환호는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환호만으로는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다.
‘책방 오늘’이 통의동으로 옮겨와 작은 서점으로 자리를 잡아온 시간은 지역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노벨상은 불쏘시개였고, 골목은 잠시 무대가 됐다. 그러나 불이 꺼진 뒤 남는 것은 결국 일상의 문화 기반이다. 독서 모임과 낭독회, 동네의 작은 공간들, 그리고 한 번 쓰러진 뒤에도 후계목으로 이어지는 나무 같은 것들이다.
통의동 백송터에 서면 거대한 둥치가 말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1년, 환호는 사라졌고 골목은 다시 고요해졌다. 문제는 고요함이 아니라 그 다음이다. 기념은 넘치지만 축적은 부족하고, 이벤트는 반복되지만 일상은 바뀌지 않는다. 환호는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나 환호에서 멈추는 사회는 결국 기억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통의동은 조용히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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