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정자법의 주인에게 정치자금 위반을 씌우려는 특검의 무리수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정치에는 아이러니가 넘친다. 그러나 이번 '오세훈 기소' 만큼 묘한 장면도 드물다. 정치자금법, 소위 '정자법'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2003년 한나라당 쇄신파가 5공 대선자금의 불투명성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투명정치를 외칠 때, 그 선두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오세훈이었다. 그는 볕이 들지 않던 정치자금 처리를 법의 틀 안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급기야 "정치자금 투명화는 정치 개혁의 첫 문턱"이라며 법 체계를 재정비한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정자법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오세훈 법'이라는 별칭까지 썼다.
 그런 오세훈을, 그 법을 만든 사람을, 특검이 1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아이러니를 넘어 어떤 비틀린 정치적 풍경을 보는 듯하다.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다. 특검 공소사실은 간명하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부탁했고, 측근이 이를 진행했으며, 외부 인물이 비용을 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오세훈 시장이라는 사람의 특성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더더욱 그렇다. 오 시장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사람'이다. 추상적 도덕률을 정치에 대입하는 고집스러운 스타일이다. 위험한 구석이 보이거나, 사적 이권과 얽히거나, 정치적 편법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수십 년간 '깨끗한 정치'를 스스로 상징처럼 들고 살아온 인물이다. 그래서 정치판에서 늘 외로운 길을 걸었고, 때로는 손해도 많이 봤다. 이런 사람이 명태균 같은 즉흥적이고 경계가 모호한 인물과 '정치적 동지'라도 되는 듯이 공작성 여론조사를 벌였다는 특검의 주장은 현실감이 턱없이 떨어진다. 명태균이라는 사람의 성향은 이미 정치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오 시장이 좋아하거나 신뢰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오 시장은 논리, 절제, 검증된 언어를 중시한다. 상대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어떤 정무적 가치 체계를 갖고 있는 지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 명태균은 그 틀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인물에게 '여론조사 부탁'을 한다는 시나리오는, 정치를 1년만 취재해 본 기자라도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는 스스로 '오세훈 전담 실세'라고 믿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오 시장과의 관계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려 했고, 자신보다 앞서 시장과 소통하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강철원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런 인물은 외부 사람을 끌어들여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을 함께 꾸미는 타입이 절대 아니다. 특검이 그린 구조도(오세훈→강철원→명태균→김모씨)가 현실 정치에서 돌아갈 가능성은 극히 낮다.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정무 현실과 특검의 상상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특검 발표문을 면밀히 들여다봐도 결정적 증거는 찾기 어렵다. 직접 지시나 자금 제공 정황을 입증할 만한 녹취록, 문건, 자금흐름 자료가 없다. 결국 명태균과 일부 인물의 진술에 크게 의존한 구조다. '정치적 목적성을 가진 진술'이라는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증거재판주의가 엄격한 한국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이 사건이 유죄로 이어질지 조차 미지수라는 법조계의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이날 오후 2시 30분, 특검 발표문 엠바고가 풀리자, 오세훈 시장은 곧바로 입장문에서 "민주당 하명특검의 '오세훈 죽이기'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서울시 입장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정치적 공격이다."  정치는 때로 의심과 선동, 오해가 뒤섞인 소음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정치인 오세훈의 스타일은 법률 문서보다 더 정직하다.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본 기자들에게는 보이는 것이 있다. 오세훈은 쉽게 길을 바꾸지 않는다. 명분 없는 편법을 쓰지 않으며, 사적 위험을 동반한 인물과 정치적 공작을 함께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 특검의 기소는 법적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의 타이밍, 정치적 압박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 이제 공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만든 힘은 법정이 아니라 정치다. 정치자금법을 만든 사람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이 본말전도는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를 넘어, 정쟁의 무리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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