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43) 동남아 고산지대 커피 벨트를 따라서

  • 달랏, 부온마투옷, 플래이꾸, 꼰뚬, 그리고 볼라벤고원  

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베트남 남서부 산간지대를 여행하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굴곡진 언덕과 그 아래 펼쳐진 마을들을 볼 수 있어 좋다. 남서부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달랏(Da Lat)이다. 달랏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 고원지대 휴양지로 개발된 도시다. 달랏이 속한 럼동(Lam Dong)성은 고랭지 채소, 꽃, 후추, 차, 커피 등을 재배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럼동성에서 북쪽으로 닥락(Dak Lak)성, 자라이(Gia Lai)성 지역으로 베트남의 커피 벨트가 이어진다. 동아시아에서 커피 하면 베트남이 일등이다. 베트남은 세계 2위 생산 및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세계 5위 생산국으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그 커피 품질이 좋아 만델링, 자바 모카, 또라자 등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스페셜티 커피로는 루왁 커피가 유명하다. 이는 사향 고양이가 커피콩을 먹고 싼 배설물에서 알갱이를 골라 세척해 만드는 것이다. 커피 체리가 고양이의 위장을 통과하는 동안 부드럽고 향긋한 커피로 변한다. 루왁 커피 수요가 많아지자 사람들은 사향 고양이를 케이지에 가둬 기르며 커피콩을 먹게 해 동물 보호를 위해 루왁 커피를 마시지 말자는 주장도 거세졌다. 베트남도 루왁 비슷한 족제비 커피(까페 쫀 ca phe chon: weasel coffee)를 생산한다. 봉지 표면에 족제비 그림이 있다고 다 족제비 커피는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도 커피를 생산하는데 한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중국 남부 윈난성에서도 커피 생산을 늘리고 있다. 동아시아 커피벨트를 따라가는 여행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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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마투옷 커피 농장 사진=이한우]
 
 
- 달랏, 부온마투옷(Buon Ma Thuot)
 
달랏은 1500m 고지대에 있기에 아라비카 커피 생산에 적합한 지역이다. 베트남 커피의 90%가 로부스타종이긴 하나 향과 맛이 좋은 아라비카종이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생산된다. 베트남에서 커피를 살 때 어떤 커피 종류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포장지 겉면의 성분 표시를 살펴보는 게 좋다. 달랏 지역에서 아라비카종을 생산하는 곳으로 꺼우덧(Cau Dat)이 잘 알려져 있다. 몇 해 전 들은 바로는 스타벅스도 꺼우덧 커피를 쓴다고 한다.

달랏에서 북쪽으로 산간 도로를 타면 닥락성 부온마투옷에 이른다. 이 도시는 부온메투옷(Buon Me Thuot), 반메투옷(Ban Me Thuot)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불린다. 베트남 남서부 산간지대의 중심 도시다. 그곳에 가면 쭝응우옌(Trung Nguyen) 커피 정원을 둘러볼 수 있다. 커피 정원은 넓은 정원에 펼쳐 놓은 거대한 커피숍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커피의 역사, 커피 관련 도구 등을 수집해 놓은 소규모 박물관이기도 하다. 매년 커피 축제를 열기도 한다. 쭝응우옌은 당레응우옌부(Dang Le Nguyen Vu)가 1996년에 설립한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다. 쭝응우옌이 커피를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전국 수백 개 매장에서 커피를 판다. 당레응우옌부 부모는 신경제지구 개발 과정에서 동부 카인호아(Khanh Hoa)성에서 닥락성으로 이주했다. 신경제지구는 베트남이 1975년 통일된 이후 도시의 과밀 인구를 자원 또는 강제로 이주시켜 개발한 지역이다. 당레응우옌부는 1990년부터 떠이응우옌(Tay Nguyen)대학에서 공부한 후 1996년에 쭝응우옌을 설립했다. 이후 1998년에 호찌민시 푸뉴언 지역에 첫 카페 매장을 열고, 프랜차이즈 모델로 매장 수를 늘려 전국에 수백 개 매장을 열었다. 동시에 G7 브랜드로 인스턴트 커피를 슈퍼마켓에서 판매했다. 이로써 쭝응우옌이 베트남의 대표 커피 브랜드가 됐다. 그가 현대 베트남 커피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하일랜즈(하일랜드)가 도전장을 냈다. 하일랜즈는 베트남계 미국인 데이비드 타이가 베트남의 스타벅스를 꿈꾸며 1999년에 설립했다. 하일랜즈는 이제 300여 개 매장을 가져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커피전문점이 됐다. 그 지분의 49%는 필리핀 패스트푸드 회사인 졸리비에 속하게 됐다.

부온마투옷은 남서부 산간지대 산물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면서 베트남전쟁 때 전략적 요충지였다. 북베트남군이 서부 산악지대로 공격해 들어와 1975년 3월 10일 부온마투옷을 점령한 것은 베트남전쟁사에서 획기적 사건이었다. 부온마투옷의 점령은 동부 해안의 다낭을 함락시킨 것만큼이나 전략상 중요한 일이었다. 북부군이 남부 공격에서 이 도시를 점령하며 승기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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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온마투옷 전승기념비 사진=이한우]

   
 쁠래이꾸(Pleiku), 꼰뚬(Kon Tum)
 
14번 국도는 부온마투옷에서 북으로 쁠래이꾸, 꼰뚬으로 이어진다. 이 도로는 베트남의 서부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잇는 등줄기에 해당하는 호찌민도로에 속한다. 이 도로는 곧 아시안 하이웨이(AH) 17번 도로이기도 하다. 자라이와 꼰뚬에서도 커피가 생산되나 그곳의 또 다른 특산물은 인삼이다. 잠깐 커피 이야기에서 빠져야겠다. 베트남 인삼은 자라이-꼰뚬 지역에서 나는데, 그 효능이 한국 인삼 못지않다고 알려졌다. 베트남 인삼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응옥린(Ngoc Linh)삼이다. 응옥린은 꼰뚬성(현 꽝응아이성) 닥그레이(Dak Glei)현에 속해 있다. 베트남이 최근에 3급으로 구성됐던 지방행정체계를 중간급인 현(huyen)을 없애고 두 급으로 개편했기에 이 지역도 새로운 행정체계에 편성됐다. 회사들은 응옥린삼으로 인삼주나 진액을 만들어 시장에 낸다. 어떤 것은 한국 인삼보다 더 비싼 값에 팔린다고 한다. 전에 하노이 한국대사관에 갔을 때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응옥린삼 이야기가 나와 최영삼 대사가 그 인삼주를 반주로 낸 적이 있었다. 응옥린 인삼주가 한국 인삼주와 맛이 달라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내 입맛에는 한국 인삼주가 잘 맞는 것 같았다. 한국 인삼은 오래전부터 베트남에서 인기 품목이었다. 최병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베트남 왕이 신하들에게 한국 인삼을 하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왕조시대에 한국과 베트남이 직접 교역했다는 정보가 없으니 한국 인삼은 중국을 통해 베트남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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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꼰뚬성 소수종족 마을 가옥과 성당, 아이들 사진=이한우]
 
   
 
 볼라벤(Bolaven)고원, 라따나끼리(Ratanakiri) 
 
베트남 커피 벨트는 자라이-꼰뚬의 서부 국경을 넘어 라오스 동남부 볼라벤고원, 캄보디아 동북부 라따나끼리로 이어진다. 볼라벤고원의 중심 도시는 팍세(Pakse)다. 그 현지 발음은 ‘빡세’에 가깝다. 거기에서 볼라벤고원 커피 투어에 참여해볼 만하다. 볼라벤고원에서 커피농장을 운영하는 한국인도 있다. 유기농 커피를 공급하기도 하고 공정무역을 통해 국내에 라오스 원두를 공급한다. 라오스 커피의 품질은 여타 커피에 뒤지지 않으나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내가 라오스 현지에서 맛본 라오스 커피는 참 맛있었는데, 한국에 수입된 라오스 커피에서 그 맛을 느끼진 못했다. 라오스 커피는, 내 느낌으로는, 복합적이지 않고 단순하며 마일드한 맛을 준다. 화려하지 않고 강하지도 않은 소박한 순수한 맛이라고 할까. 라오스도 베트남처럼 아라비카보다는 로부스타종을 더 많이 생산하고 있다. 전체 커피 생산에서 로부스타의 비중은 약 80%다. 아라비카종에는 카티모르(Catimor)와 티피카(Tipica) 종이 있는데, 티피카의 향과 맛이 더 좋은 편이다. 라오스 커피의 명가 시누크(Sinouk) 커피는 프렌치, 이탈리안, 시티 등 여러 형태의 로스팅 원두를 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저패니즈 로스팅이 있다는 것인데, 아마 일본인 소비자를 타깃으로 만든 것이리라 짐작한다. 얼마 전부터 코리안 로스팅도 나왔다. 두 종류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지 못했지만 모두 미디엄 로스팅 정도라고 여겨진다. 아메리칸 로스팅은 뭔지 모르겠다. 시누크 커피는 볼라벤고원에 숙소를 짓고 에코 투어를 실천하고 있고, 팍세 시내에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라오스에서는 다오(Dao) 커피가 다량 판매되고 있다. 다오 커피는 베트남인 기업인 소유의 회사로 알려져 있다. 어떤 베트남 회사는 라오스에서 커피 생두를 구입해 베트남 내에서 가공해 베트남산으로 팔기도 한다. 따라서 베트남산 베트남 커피와 라오스산 베트남 커피, 이 둘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팍세에 가면 참파삭(Champasak) 유적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팍세에서 남부의 메콩 중하류에 있는 시판돈(Si Pan Don)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시판돈은 사천 개의 섬이라는 뜻이다. 운이 좋으면 메콩강에서 민물 돌고래를 볼 수도 있다. 아직 관광지로서 잘 개발되지 않아 배낭여행 목적지로 적합하다. 여기서 라오스 사회를 날것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 시판돈에서 남으로 향하면 캄보디아 국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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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팍세 볼라벤고원의 소수종족 마을 사진=이한우]

 
캄보디아의 커피 생산지 라따나끼리는 캄보디아 동북부에 있는 지역이다. 나는 라따나끼리 커피를 몇 번 맛봤는데, 아라비카, 로부스타 모두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커피 수준은 아직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동남아 대륙부 인도차이나 3국의 접경지대에 이렇게 커피벨트가 놓여 있다. 이 지역에서 커피뿐만 아니라 후추, 계피, 목재 등 임산물과 광산물이 쏟아져 나온다. 부의 원천이다. 박영한 작가도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그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에 지방 도지사가 계피의 이권을 독점해 부를 늘리고 있었다고 썼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활약하던 스캠 조직이 국경지대로 도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국경지대가 위험 지역은 아니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부인이다. 국경지대는 오랫동안 국가와 무관하게 삶을 영위해온 소수종족의 터전이었다. 이제는 다수의 저지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해 살기에 소수종족만의 땅이라고 할 수 없게 됐다.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들의 삶을 엿봄으로써 동남아 사회의 다양한 부분 중 한 부분을 이해하게 된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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