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 스님]
가까운 곳에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억새공원이 있다고 하여 가까이 있는 도반 몇 명과 ‘번개팅’으로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으로 오후 나들이를 했다. 사실 말만 들었지 그동안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곳이다. 전체일정을 소화하는데 반나절이면 족했다.
입구 주차장에서 하늘공원까지 전동차를 운영했다. 걸어서 올라가려는 사람들보다는 셔틀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매표창구에는 ‘맹꽁이 차’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 정도면 작명 상상력도 수준급이라 하겠다. 전혀 맹꽁이 모습을 닮지 않았다. 관광지라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개방형 전기수레차에 ‘맹꽁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으니 엄청 환경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타기만 해도 하늘공원 계곡 어딘가에 살고있을지도 모르는 맹꽁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늘공원’이라는 표지석 앞을 지나 한강변을 끼고있는 바깥 길을 따라 걸었다. 맑은 하늘이 푸른 강물과 맞닿은 자리를 지그시 응시하며 저녁노을까지 겹쳐친 풍광을 상상했다. 이내 고개를 돌리니 온통 억새밭이다. 5만평 남짓이라고 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광활한 억새밭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이롭다. 물론 자연산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심고 가꾼 것이다. 일백여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함께 했음을 알 수 있겠다.
물론 난지도는 경치도 뛰어났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그림에서 서울 근교의 명승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는 금성산 앞에 있는 모래섬이란 뜻으로 ‘금성평사(錦城平沙)’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1804~1866)는 한양의 상세판인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와 〈수선전도(首善全圖)〉에서 중화도(中華島)로 표기했다. 꽃섬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에도 수십가구의 주민들이 밭에서 수수와 땅콩을 재배하며 살았다고 하는 까마득한 옛 이야기까지 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1978년부터 15년간 서울시민의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되면서 100m 높이의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바뀌었다. 이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다시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작업이 뒤따랐다.
2025년 하늘공원의 억새축제가 벌써 24회를 맞이했다고 한다. 갈대와 억새는 다르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물가에 핀 것은 갈대라고 하고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것은 억새라고 분류한다. 공중파의 장수 프로그램 ‘가요무대’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노래제목 ‘짝사랑’)”에서 등장하는 으악새는 새이름이 아니라 억새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안내판에 적어 놓았다. 이처럼 난지도는 꽃섬과 생활폐기물 처리장이라는 상반된 역사가 중첩된 곳이다. 그 위에 다시 억새공원을 조성되었으니 삼중적 이미지가 겹쳐진 곳이다. 필요에 다라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지만 이처럼 극적인 변화를 겪는 터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억새에 파묻힐 만큼 키 크고 우거진 길을 따라 많은 이들이 함께 걸었다. 휠체어에 의지해서 다닐 수 있을만큼 무장애도로가 대부분이다. 청춘남녀들은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 삼각대까지 갖추고서 구석구석 다니면서 셔터를 눌렀다. 꼰대세대들도 결국 남는 것은 사진기록 밖에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서로 번갈아가며 카메라를 연신 작동시켰다. 갈대꽃에 저녁 해가 걸리면서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그 옛날 난지도는 홍제천 성산천 샛강 난지천으로 둘러 쌓인 곳으로 갈대가 우거진 자리에 들오리가 날아드는 곳이라 압도(鴨島 오리섬)라고도 불렀다. 타임머신을 타고서 순간이동을 한다면 당나라 시절 함께 갈대밭을 거닐던 마조(馬祖709~788)선사가 제자 백장(百丈?~814?)에게 “방금 그 들오리(野鴨)는 어디로 날아갔느냐?”고 물었던 곳까지 갈 수도 있겠다. 갑작스런 질문에 어물쩡거리며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바로 코를 비틀었다는 일화를 전해 들은 상방 익(上方 益)선사도 뒷날 한 마디 거들었다.
유수(流水)는 유서동(有西東)이나
노화(蘆花)는 무배향(無背向)이라
흐르는 물은 동쪽 서쪽이 있으나 갈대꽃은 앞도 뒤도 없어라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연구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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