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11월 14일 한·미 양국은 통상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였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하면서 시동을 건 한·미 통상협상이 10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안보 문제 등이 함께 고려되었지만 통상협상만 떼놓고 보면 그 골자는 한국이 트럼프 임기 중 2000억 달러를 에너지, 반도체 등 미국 정부가 정하는 프로젝트에, 1500억 달러를 미국 조선업에 투자(마스가)하는 대신에 한국 자동차에 15%, 의약품에 최대 15% 관세율을, 반도체에는 다른 나라 관세율과 동등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3500억 달러와 별도로 한국 기업들은 지난 8월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발표하였다. 한국으로서는 지난 정부에서 초기 협상을 맡았다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새 정부가 본격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타결하였다.
이 협상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잘된 협상이라는 주장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두 가지로 평가의 관점을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팩트의 관점으로서 대미 협상을 한·미 양국 간 협상으로 볼 것인지 또는 사실상 다자간 협상을 볼 것인지의 관점이다. 또 하나는 대학에서 중간시험과 기말시험이 있듯이 협상 팩트에 대한 평가와 달리 이행 결과를 평가한다는 관점이다.
다자간 협상의 시각에서 보는 관점이다. 필자는 일찍이 대미 통상협상을 한·일전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대미 협상을 일본의 대미 협상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잘했니 못했니 하는 평가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관세를 무기로 다자협상 차원으로 분위기를 잡아놓고 국가들을 줄 세워 경쟁시키고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유럽의 종래 인식인 “아시아는 일본을 리더로 하는 정부 중심의 수출드라이브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기러기 편대 국가들”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러면서 아시아 국가들 너희가 수출로 번 돈 대미 투자로 내놓으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미국 건국 초기부터 참여한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시장경제 국가로 보아 아시아 국가들과 같은 강요를 하지 않았다. 수출 주도로 미국과 맞짱을 뜨는 중국은 제대로 손봐주고 싶지만 중국의 힘이 만만치 않으니 어정쩡하게 타협하고 있다. 결국 제일 세게 얻어터진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대미 협상 결과가 한국의 기준이 되었으니 미국으로서는 오랑캐 간에 싸움을 붙여 놓고 재미본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먹힌 셈이다. 한·일 양국의 대미 투자액을 가지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지만 투자액도 논쟁거리지만 자동차만 보더라도 한국은 무관세였고 일본은 2.5% 관세였는데 이제는 똑같이 15%를 적용받는 상황이고 철강 관세는 50% 그대로니 관세로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이 더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자간 협상의 분위기에서 어느 정부, 어느 통상담당자가 맡든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느냐고 가정법으로 물으면 답변하기 어렵다. 어느 정부든 통상담당자들은 당연히 최선을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결과의 관점이다. 당장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한·미 통상의 결과가 나온 뒤에 평가할 수 있다. 굳이 끝난 대미 협상을 결과적 측면에서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앞날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미국 대법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 트럼프는 그동안 걷은 관세를 각국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트럼프는 걷은 관세를 국민에게 현금 지급하겠다고 하지만 이 같은 포퓰리즘의 정치적 선동이 비록 트럼프를 뽑은 미국 사회지만 먹힐 가능성이 낮고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결국 판결 이후에 트럼프는 관세를 환불하고 위법한 조치를 합법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리수지만 다른 법률에 근거해서 새로운 관세 부과 조치를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트럼프는 기존에 체결한 각국의 통상협상 결과, 특히 대미 투자 약속을 “그대로 이어받기”로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치적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대외 조치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가용 수단은 관세밖에 없으니 물러설 곳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관세 조치와 각국의 대미 투자 약속을 일수불퇴로 외칠 때에 여태껏 대미 통상협상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트럼프 주장에 반대하면서 트럼프 목에 방울을 달려고 나설 국가가 없다. 대미 투자 약속은 그대로 진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대미 투자가 이행되는 과정과 그 결과가 최종 평가의 대상이다. 일본과 비교한 대미 협상 결과도 이행 과정과 결과를 보아야만 제대로 비교될 수 있다. 미국은 미국 주도로 투자를 이행하려 할 것이고 우리는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미국 정부 주도의 공공투자는 생산성이 높을 리 없다. '상업적 합리성'은 매우 모호한 잣대이고 투자 결정의 객관적 기준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투자 프로젝트에 따라서는 국내에서 반대 여론이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한국 노조에서 대미 투자에 강력히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대미 투자를 해야 하는 주체들은 국내에도 투자할 것이라고 민심을 달래겠지만 돈이 정해져 있고 세계 생산 플랜도 짜일 마당에 선택지는 많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국내 산업공동화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기업은 떠나가는데 국내에서는 기업 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지는 각종 규제법률은 없어지는 규제보다 훨씬 많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전기요금의 큰 폭 인상 등 선진국도 미루는 친환경 드라이브는 강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경쟁력 있는 중국산이 마구 몰려드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수출에 매달리고 해외 투자에 더 관심을 가질 전망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산이나 들로 모두 몰려 나가면 집에 있는 소는 누가 키우나? 소 잃기 전에 집안 외양간부터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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