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 황학산수목원에서 경험한 사운드워킹(Sound Walking)은 그 낯선 시도를 통해 감각을 깨운 시간이었다. 눈으로 보는 대신 귀로 느끼는 여행.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 바람의 숨결,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겹치며 숲 전체가 하나의 음악처럼 다가왔다.
황학산수목원은 여주 황학산 자락에 자리한 생태정원으로, 총 27만2704㎡(약 8만2638평) 규모 부지에 조성됐다. 27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이곳은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습지원·석정원·산열매원·미니가든·항아리정원 등 식물의 생태와 기능에 따라 나뉜 테마정원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수목원은 멸종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와 미선나무의 보전·복원에도 힘쓰며, 산림문화 체험과 휴양 서비스를 통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른 아침, 수목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헤드셋을 착용하고 지향형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전문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볼륨을 키우니, 마이크가 포착한 미세한 소리들이 헤드셋을 타고 귓가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의 떨림, 나무 위에서 퍼지는 새의 울음까지 모든 소리가 한층 또렷해졌다.
“자, 이제 자리에 누워보세요. 눈을 감고 들으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해설사의 말에 따라 중간 지점에서 자리를 펴고 누웠다. 눈을 감자 숲은 온전히 귀를 통해 살아났다. 바람이 가지를 흔드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풀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순서 없이 겹쳐 들려왔다.
이번 사운드워킹은 GKL사회공헌재단과 여주시가 공동으로 기획·운영한 포용형 관광 프로그램이다. 재단은 관광의 접근성과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 시각 대신 청각에 집중한 감각 기반 여행을 개발해왔으며, 황학산수목원의 사운드워킹은 그 대표 사례다.
GKL사회공헌재단 관계자는 “사운드투어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여행자가 ‘소리로 걷는 여행’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개발된 포용형 관광콘텐츠”라며 “재단의 핵심사업을 더 많은 국민에게 알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 모델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운드워킹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체험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자신을 새롭게 연결하는 과정이다. 청각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주변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 자신을 듣는다. 숲의 소리와 사람의 호흡이 겹치고, 그 안에서 짧지만 선명한 교감이 피어난다.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 풀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 꽃에 앉은 벌의 날갯짓이 반주처럼 들려왔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생명의 소리가 들어섰다. ‘조용히 듣는다’는 것은 결국 ‘다시 존재를 느끼는 일’이라는 걸 이 숲이 일깨워준다.
사운드워킹은 여행이라기보다 회복의 과정이다. 눈을 감고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GKL사회공헌재단의 이 포용형 프로그램은 관광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감각의 회복이자 관계의 회복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 길의 끝에는 ‘자연’이 아니라, 오롯이 깨어난 나 자신이 있었다. 숲이 들려준 소리는 결국 내 안의 고요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