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격 인상은 무조건 '惡'인가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서민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특히 식품 가격에 대한 통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소비자 체감 물가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식품 가격은 정치적·사회적 파급력이 크다. 이에 정부는 식품업체들에 가격 인상 자제 등을 요청하며 '국민 부담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조선 시대 때도 매점매석한 사람을 잡아 사형시키고 그랬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담합 가능성을 언급하며 식료품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유통구조 개혁 등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일 테지만,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 수위에 식품업계가 느끼는 고민과 딜레마의 깊이는 심화되고 있다. 

국제 곡물가와 원유, 설탕, 포장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인건비와 물류비, 환율 상승까지 겹치면서 생산비 전반이 상승했지만 업체들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가격 인상을 선뜻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편법이 등장했다. 겉으로는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내용량을 줄여 사실상 단가를 올리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가격이 그대로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 적은 양을 더 비싼 값에 구매하는 셈이다. 정부의 정책이 의도하지 않게 ‘보이지 않는 가격 왜곡’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는 타당하다. 그러나 지나친 가격 통제는 시장 기능을 왜곡시킨다. 기업이 합리적인 원가 반영조차 하지 못하면 품질 하락, 제품 단종, 신규 투자 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소비자의 선택권마저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격 인상은 무조건적인 ‘악(惡)’이 아니다. 정당한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조정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유 없는 인상이나 소비자를 기만하는 인상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현재의 분위기에서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상조차도 ‘탐욕’처럼 비친다. 

정부가 단기적인 물가 억제에만 집중해 기업을 옭아매면 기업은 장기적으로 불확실성과 손실을 떠안는다. 물가 안정은 정부의 책무지만 비용 부담은 곧 기업의 생존 문제나 다름없다. 

지속 가능한 물가 안정은 단순히 가격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비용을 줄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공급망 효율화, 원가 절감 지원, 유통 투명성 확보 등으로 기업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 역시 ‘꼼수 인상’ 대신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정직한 가격 정책’을 펼쳐야 한다.

다수의 소비자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싼 가격만이 아니다. 정직한 값에 정직한 품질을 갖춘 제품이다. 물가 안정은 국민 삶을 위한 정책이어야 하지만 산업의 지속 가능성 또한 그 축을 함께 이뤄야 한다. 정부의 단기적 억제와 기업의 현실적 대응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이 지금 한국 식품산업이 마주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