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에게 '블랙 코미디'는 오랫동안 품어온 도전이었다. 그는 늘 인간의 욕망과 권력, 그리고 그 이면의 아이러니를 다뤄왔지만, 이번엔 한층 더 유머러스하고 냉소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두려웠어요. 장르적 충성도가 높은 편도 아니고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장르도 아니니까요. 국내에서는 '기생충'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있잖아요. 감독들에게는 일종의 '꿈의 장르' 같아요. 진짜 선수들만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이제 저도 여섯 번째 작품이기도 하고 한 번쯤은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해봤죠. 다행히 재밌게 작업했고, 그만큼 힘들기도 했어요."
이번 작품에서 변성현 감독은 이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동시에 한 발짝 물러선 시선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직접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가'보다,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길 바랐다.
'굿뉴스'에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인물이 등장한다. 설경구가 연기한 '아무개'다. 그는 극 중 인물들과 함께 있지만, 동시에 그 바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듯한 존재다. 변성현 감독은 이 캐릭터를 통해 영화의 4차원 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어찌 보면 제 분신 같은 인물이기도 하죠. 감독이기도 하고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 그런 시선을 담고 싶었어요. 설명적으로 보이지 않게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걸 (설)경구 선배님이 훌륭하게 만들어주셨어요. 그런 면에서 경구 선배를 전적으로 믿었죠."
변성현 감독에게 설경구는 더 이상 한 명의 배우가 아니다. '페르소나'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은 이미 깊은 신뢰로 묶여 있다. '불한당'을 시작으로 '킹메이커', 그리고 '굿뉴스'까지, 세 작품을 함께 하며 만들어진 유대감은 단순한 협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쯤 되면 믿어줘야죠. 하하. '불한당' 때는 정말 티격태격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때 아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 같아요. 경구 선배님이 저를 '이해가 안 가도 믿고 간다'고 해주시는데, 그게 참 놀랍고 감사하죠. 사실 '지천명 아이돌'이 될 거라 예상하고 한 건 아니에요. 그런 결과가 결국 '신뢰'라는 걸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어요. 이번 작품에선 전적으로 믿어주시더라고요. 평소엔 질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으면 잘 안 움직이시는데, 이번엔 안 풀려도 어떻게든 해봐주시고 '이게 맞아?' 그것만 물어보셨어요."
변성현 감독은 이번 '굿뉴스'에서 캐스팅 단계부터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히 전복했다. 류승범과 전도연을 각각 '중앙정보부 부장'과 '영부인' 역으로 세우면서도, 관습적으로 소비되던 권위와 카리스마의 이미지를 완전히 해체해낸 것이다.
"이 장르에서는 늘 뻔하잖아요. 중정 부장은 강렬하고 권위적인 인물로 그려지고요. 그런데 그런 걸 보는 게 좀 지겹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아이처럼 해달라고 부탁드렸죠. 아이가 천진난만할수록 악한 일을 하잖아요. 자기 행동이 악한지도 모르고요.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위스키잔으로 표현하려던 장면을 우유잔으로 바꿨어요. 권위보다는 순진함, 무의식적인 잔혹함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는 전도연이 연기한 '영부인' 역시 실존 인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 않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여러 명의 조합이라고 할까. 관료주의 속에서 우스꽝스러울 만큼 체면에 집착하는 인물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조합해서 만든 캐릭터예요. 현실에서 봐도 조금 어이없고 동시에 너무 익숙한 그런 인물 말이에요."
'굿뉴스'는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풍자극이자, 변성현 감독의 첫 국제 협업작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일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며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특히 야마다 타카유키를 비롯한 일본 배우들과의 협업은 영화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야마다 타카유키는 원래 팬이었어요. 거절당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도 '한 번 찔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제안했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길복순'으로 저를 알고 계셨대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죠. 다른 배우들도 난항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일본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배우를 서치하는 데는 좀 오래 걸렸어요."
영화의 배경이 된 '요도호 사건'은 일본 내에서도 생소한 역사적 소재였다. 변 감독은 "배우들도 대부분 '들어본 적은 있다' 정도였어요. 다들 시나리오를 보고 찾아보더라고요. 태어나기 전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흥미를 느낀 건 풍자였어요. 야마다 타카유키도 '일본에서는 이런 관료주의 풍자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런 영화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연출 과정에서도 그는 일본 배우들의 리듬과 표현 방식을 존중했다. "외국 배우들이 한국 영화에 나오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유의하면서 찍었어요. 일본 배우들에게 '이 대사나 행동이 자연스럽냐' 계속 물어봤죠. 일본 문화권에서 어떻게 느껴질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25분 가까이를 일본 배우들이 끌고 가는데, 일본에서 만든 일본 영화처럼 보이길 바랐거든요."
또한 변 감독은 "일본 배우들은 연기 '쪼'가 한국 배우들과는 달라요. 한국 배우들이랑 붙으면 제가 원하는 리액션이 바로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배우들이 '일본인은 저런 반응 안 해요'라고 말하죠. 그러면 '그럼 어떤 리액션이 자연스러울까?'를 같이 찾아갔어요. 시나리오도 그 과정에서 많이 고쳤고요. 덕분에 훨씬 자연스러운 흐름이 완성된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변 감독은 일본 유명 만화인 '내일의 죠'를 영화에 사용하기 위해 타카모리 아사오 작가에게 직접 편지를 쓴 사연도 밝혔다.
"실제 적군파가 언급하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을 쓰면서 꼭 그 장면을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엔 작가님이 거절하셨죠. 그래도 포기하기 싫어서 손편지를 써서 부탁드렸어요. 진심이 통한 것 같아요. 한 달 정도 걸려서 허락을 받았고, 그 후에 만화책에 있는 장면을 바탕으로 저희가 직접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어요."
그는 극장 아닌 OTT 공개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게 전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 프로젝트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해준 곳이 넷플릭스였고요. 극장 개봉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제가 만족하면서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OTT든 극장이든 손뼉만 잘 맞을 수 있다면 뭐든 작업하고 싶어요. 시리즈는 자신 없지만요. 재밌는 작업이라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에 대한 의견도 담담하게 전했다.
"후회되는 장면이야 당연히 있죠. 하지만 제 노력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한 가지 만족스러운 건, '킹메이커' 때의 실수를 이번엔 좀 만회한 것 같아요. 작가로서 그 점이 제일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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