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 데뷔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 한국, 중국 정상과 잇따라 첫 회담을 가진 가운데 일본에서는 그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실용적인 '현실 외교 노선'을 택했다고 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일 경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임 후 가진 한·미·중 정상과의 외교에 대해 "앞으로의 정상 외교를 추진할 기반을 다졌다. 착실한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취임 12일 만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그리고 APEC에 이르기까지 연속 외교 일정을 소화한 점도 강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다카이치 총리가) APEC 회의 틈틈이 각국 정상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며 친밀감을 연출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웃으며 악수를 나눈 후 자리에 앉기 전 뒤로 돌았다. 그는 뒷편에 세워진 태극기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반대편 일본 국기에도 고개를 숙였다. 1일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 양국 국기에 각각 한 번씩 고개를 숙였다. 한국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를 다시 일본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전했다.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미래지향적 협력'과 '셔틀 외교 재개'가 합의되며 관계 안정에 진전을 보였다. 닛케이는 다카이치 총리의 대한국 외교에 대해 "의장국인 한국에 대한 외교는 경계심을 불식시키려는 것이었다"고 평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에 강경한 자세로 알려진 이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엄중한 안보 환경 대응을 위해 한·일 양국이 협력하는 '실리'를 중시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다카이치 총리도 한·일,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회담에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양국이 '대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희석시키려 애썼다. 다카이치 총리는 보수층으로부터 '대중 강경파', '친(親)대만 정치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특히 총리 취임 전에는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거나 대만 총통을 접견하는 등 중국 측의 거부감을 키워 왔다. 이 때문에 일본 외무 당국 내부에서도 "중·일 정상회담 실현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전임 정권이 유지해온 '전략적 호혜 관계'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며 노선을 수정했다. 일본 경제와 중국 시장의 상호 의존도를 고려할 때 강경 일변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 측근도 "이념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는 '현실 노선'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사히는 "(한·중) 양국에는 다카이치 총리의 역사 인식 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총리가 양국을 '중요한 이웃나라'로 규정하고 관계 구축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덕분에 회담이 성사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한국과의 관계와 달리 대중 외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 요인이 커 보인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여전히 대만 문제와 역사 문제를 언급하며 선을 그었고, 일본 언론은 이에 대해 "표정 없는 악수, 긴장감 속 회담"(요미우리), "한·일 회담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마이니치)라고 전했다.
실제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에 게재된 중·일 정상회담 소식을 보면 시 주석의 표정에는 미소가 없었다. 다카이치 총리의 온화한 표정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에 대한 일본 보수층의 반응은 엇갈린다.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강경 노선을 기대했는데 현실 노선으로 후퇴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특히 보수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총리가 되어 갑자기 외교 자세가 바뀌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다카이치 외교는 '보수 이념'과 '경제·안보 현실' 사이의 줄타기에서 적어도 출발은 '현실 노선'으로 시작한 셈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의 한 칼럼은 이를 두고 "보수층의 환호 속에 태어났으나, 국제정세는 그녀에게 현실적 외교를 강요하고 있다"고 평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일본 내 지지층의 기대와 국제 환경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다카이치 외교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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