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가은 감독 "열여덟 여고생들이 겪는 세계, 편견없이 그대로 담았죠"

  • 전교생 참여한 서명운동 홀로 거부한 뒤 받게 된 '의문의 쪽지'

  • 10대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겪는 성·사랑·연애 이야기 담아내

  • 주인공 모두 성인 신인… 장혜진·이상희 배우 '든든한 버팀목

  •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해외 유수 영화제서 인정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윤가은 감독은 언제나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어른들의 현실을 비춰왔다. 하지만 신작 ‘세계의 주인’은 조금 다르다. 6년 만에 돌아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 사람의 시선을 넘어 관계와 세계 전체로 시야를 확장했다.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열여덟살 ‘주인’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인물들이 얽히고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미묘한 파동들을 그려낸다.

‘우리들’, ‘우리집’을 지나오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결을 만들어온 윤가은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온도로 세계를 빚는다. “이제는 한 인물이 아니라 그 인물을 둘러싼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세계의 주인’은 인물의 성장과 그를 둘러싼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생각한 건 하나였어요. 어떤 인물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 모든 측면을 그게 가능한가? 내 안에 담긴 고정관념을 떠나서 체험하고 보고 듣고 느끼면서 스스로 생각해본 게 가장 큰 질문이었어요. 부당하지만 그런 부탁을 드린 건 성폭력 생존자가 가지는 너무나 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거든요. 피해자의 얼굴이 다양하다고 믿는 사람조차도 ‘그런 소재면 안 볼래’ 하는 마음이 작용하잖아요. 저조차도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부분을 최대한 감추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그게 목표였어요.”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윤가은 감독에게 ‘세계의 주인’은 가장 오랜 시간 씨앗을 품은 작품이다. 그는 10대 소녀들의 몸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겪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수년간 글을 고쳐 썼다. 

“지난한 과정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10대 여자아이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겪는 성, 사랑, 연애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진짜 경험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공포, 불안, 위험 같은 요소가 자연스럽게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빼고서는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요. 영화의 톤앤매너를 찾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윤가은 감독의 전작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진실을 포착했다면 ‘세계의 주인’은 그 세계를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바라본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은 18살 고등학생이지만, 실제 배우들은 모두 성인 신인들이다. 감독은 “아이의 자연스러움”을 대신해 “성인이 연기하는 청춘의 진심”을 찾고자 했다.

“저희 배우들은 다 신인이에요. 저는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만 썼다고 봐도 되고 모든 건 이 친구들이 만들어주었죠.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서 멀어졌다 보니 도움 받을 일이 많았어요. 이번 이야기는 다루는 주제가 묵직해서 실제 청소년 배우는 피했고요. 연기에 진심인 20대 배우들로 구성했어요. 이때 이상희 배우가 큰 힘을 주었어요. 극 중 담임 선생님 역할인데 실제로도 그렇게 아이들을 품어줬죠. 같이 등산을 가서 배우 한 명씩 배역에 대한 이야기, 고민 상담 같은 걸 해줬어요. 반나절이 지나니 급속도로 결속력이 생겼죠. 그다음부터는 저절로 굴러갔어요.”

윤가은 감독은 ‘세계의 주인’을 통해 신인 배우들의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그들을 감싸 안아줄 베테랑 배우들의 힘을 적극적으로 빌렸다. 신인과 기성, 두 세대의 배우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앙상블은 작품의 균형을 잡는 핵심이었다.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나왔는데 의도적이었어요. 신인 배우들이 중심에 오면 관객이 정을 붙이기까지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동안 그들을 감싸주고, 보완해줄 익숙한 얼굴이 필요했어요. 장혜진, 이상희 같은 배우들이 그 역할을 해주셨죠. 연기적으로 요구한 건 따로 없었어요. 다만 시나리오를 제안할 때는 정말 떨렸어요. 분량이 많지 않거든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그렇게 적은 역할로 부르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런데 모두 흔쾌히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해주셨어요. ‘이건 주인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걸 다 알고 계셨죠. 그래서 태선 같은 인물도 주인을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걸 이해해주셨어요."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베테랑 배우들의 태도는 단순히 연기 이상의 에너지를 현장에 불어넣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품에 몰입한 그들은 후배 배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조용한 조력자였다.

"특히 선배님들 중에는 직접 조사까지 해오신 분도 있었어요. 경찰 지인에게 사건 자문을 구하거나 현실적인 맥락을 찾아 정리해 오시더라고요. 저는 그 시기엔 정신이 없어서 챙기기 힘들었는데 그런 준비들을 스스로 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경험이 많은 배우들이 중심을 잡아주니 현장이 훨씬 단단해졌죠.”

윤가은 감독에게 영화관은 여전히 ‘이야기의 본질’을 지켜주는 공간이다. 그는 팬데믹 이후 달라진 관람 환경 속에서도 극장이란 장소만이 줄 수 있는 ‘집단적 몰입의 경험’을 믿는다. ‘세계의 주인’ 또한 그 믿음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팬데믹을 거치면서 분열되고,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간절했어요. 관객이 아무 정보도 모르고 와서 타임라인을 쫓아가며 내 옆에 ‘탁’ 생겨난 친구처럼 인물을 만나는 경험을 하길 바랐어요. 껌껌한 방에 모여 문을 닫고, 스크린만 보라고 하잖아요. 그건 누군가의 인생으로 ‘들어가 보라’는 초대잖아요. 이미 들어가면 그 시간을 채워야 하니까요.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정면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매체는 아직 영화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영화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사진=바른손이앤에이]

그는 또 ‘극장에서 함께 본다’는 행위의 감정적 울림을 강조했다. 개인의 체험이 타인과 공유되는 그 순간, 영화는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오롯이 그런 경험 안에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두운 공간에서 각자의 감정을 채우고, 불이 켜졌을 때 옆에 있는 사람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끼는 거죠. 나 혼자 본 게 아니라, 다 같이 경험한 이야기라는 게 느껴질 거예요. 그게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세계의 주인’은 속을 알 수 없는 열여덟 여고생 ‘주인’이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운동을 홀로 거부한 뒤 의문의 쪽지를 받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초청 받았고 제9회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2관왕, 제4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제69회 BFI런던영화제, 제49회 상파울루국제영화제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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