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대국민 사기극의 책임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한결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한결]

1986년 10월 30일 정부는 북한의 수공 위협을 발표했다. 북한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고 금강산댐을 터트려 남한을 물로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언론은 연일 북한의 수공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알렸다. 서울 시내가 물바다가 되고 당시 최고층이던 63빌딩도 절반이나 물에 잠기는 모습이 방송과 신문을 뒤덮었다. 수조에 담긴 모형들이 물에 잠겨 찰랑거렸다. 그 강렬한 이미지는 순식간에 온 국민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수공을 막으려면 필요하다며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한 대대적인 성금 모금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었다. 성금을 내려고 줄을 선 이들의 모습을 방송은 밤낮으로 보여주었다. 궁벽한 시골 국민학교도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10원 동전 하나가 아쉽던 꼬마도 거칠게 갈라진 손등으로 돈을 내놓아야 했다. 공책 살 돈마저 아끼던 부모도 그때는 아이에게 성금을 내주었다. 그렇게 모인 돈이 당시 639억원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기였다. 북한의 수공 위협은 과장된 것이었고, 정부가 언론을 통해 알리던 피해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국민들에게서 앗아간 거액의 돈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사기극이었지만 그것으로 처벌된 이는 없다. 전두환은 물론 사기극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어느 누구도 처벌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을 연장해 권력을 누렸다. 엉터리 사기극을 뒷받침한 서울대 교수는 총장까지 올랐다. 성금을 내야 했던 국민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친 1986년 겨울, 연탄 한 장 값이 목숨 값이던 이들의 돈도 사기를 당했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청계천을 발판으로 2008년 정권을 잡은 이명박은 대운하를 추진했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에 대운하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었기에 곧 대다수 국민의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그러자 대운하를 포기한다면서 내놓은 것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이었다. 강이 죽지 않았는데 강을 살리겠다며 사업을 벌였다. 가뭄과 홍수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가뭄과 홍수는 지천이 문제였지 사업을 벌인 본류는 아니었다.

대운하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정부는 부인했다. 관련 정부출연기관 연구원이던 김원 박사의 제보로 문화방송 최승호 피디는 2010년 피디수첩 ‘수심 6미터의 비밀’편을 제작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대운하사업이라는 고발이었다. 정부는 곧 방송금지가처분을 제기하며 대운하사업이 아니라고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디수첩 방송을 계기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의문은 더 커졌다. 하지만 처음 정부 발표 기준으로도 22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4대강 사업이 감행되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사업이 진행되는 내내 정부는 대운하사업이 아니라 강변했다. 

지난 4일 서울시는 이명박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듯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명박과 대담을 한 영상을 공개했다. 대담에서 이명박은 "차기 대통령이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경부 운하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라 했다. 한강과 낙동강만 연결하면 운하가 되도록 자신이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 사실은 대운하 사업이었음을 명백히 실토한 셈이다. 운하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던 그동안의 정부 발표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수십조 원의 세금이 소비되었지만 이를 부담한 국민들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금빛 모래의 강은 사라지고 녹조로 뒤덮인 강이 남았다. 수변 공원을 치적으로 내세웠지만 찾는 이들이 없어 폐허로 변한 지 오래다. 허위 설명으로 국민을 속여 엄청난 세금을 허비했지만 평화의 댐처럼 그 책임을 묻지 못했다. 제대로 된 조사도 없었다. 그 엄청난 돈들이 누구에게 흘러갔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곧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대국민 사기극임이 드러났으니 이제 그 책임을 물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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