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판결④] 미성년자 중고거래, '환불 불가'라는 불문율을 뒤집다

사진ChatGPT
[사진=ChatGPT]

중고거래에서는 ‘환불 불가’가 불문율처럼 통용된다. 개인 간 직거래에서 “살 땐 네 책임, 팔 땐 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법은 다르게 본다. 특히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체결한 거래라면 민법 제5조에 따라 취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 대표 사례가 있다.

2010년 8월, 한 미성년자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노트북 판매 글을 보고, 서울까지 직접 가서 판매자를 만나 물품을 확인한 뒤 73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노트북 본체에는 게시 사진에 없던 잔 흠집이 있었고, 함께 제공된 도킹 스테이션은 하자가 있었다. 운영체제도 원래 비스타용인데 윈도7이 설치돼 있었으며, 복구 CD는 없었다. 판매자가 “전 주인에게도 받지 못했다”고 답한 데다, 하드디스크는 ‘모두 지웠다’던 말과 달리 40GB가 사용된 상태였다. 약속된 노트북 가방도 빠져 있었다. 구매자가 환불을 요구했지만 판매자는 “직거래라 확인할 기회가 충분했고, 단순 외관 문제는 환불 사유가 아니다”며 거절했다.

분쟁은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갔다. 조정위는 먼저 “중고물품 거래 관행이나 직접 확인 후 거래한 점을 고려할 때 단순 상태 문제는 환불 사유로 부족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신청인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결론은 달라졌다. 민법 제5조는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체결한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이는 “거래 안정보다 미성년자 보호를 우선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판매자가 대면 과정에서 상대가 미성년자임을 인식할 수 있었으므로, 환불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결국 신청인은 노트북과 구성품을 반환하고, 판매자는 73만 원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다만 판매자의 귀책이라고 보긴 어려워, 환불 과정의 차비·배송비 등 부대비용은 신청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 사건은 **“중고거래 = 환불 불가”**라는 상식을 깨뜨린 결정으로 기록된다. 핵심은 물건 하자 여부와 무관하게, 미성년자라는 신분만으로도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민법상 미성년자 보호 규정이 강행규정으로 작동한 대표적 사례다.

실제 분쟁은 더 다양하다. 부모 몰래 가전제품이나 고가의 물건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린 미성년자와 거래한 뒤, 부모가 나서서 계약을 취소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단순히 환불로 끝나지 않는다. 미성년자가 판 돈을 이미 유흥비로 탕진했거나, 부모 위임장을 위조해 적극적으로 속인 경우라면 구매자가 오히려 피해자가 된다. 이 경우 구매자는 물건을 부모에게 돌려줘야 하지만, 정작 자신이 건넨 돈은 미성년자에게만 청구할 수 있어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법조계는 이 점에서 사전 성인인증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해야 거래 안전성이 담보된다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미성년자 거래 취소권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안전장치지만, 그로 인해 선의의 구매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사전에 성인 인증을 의무화하거나, 거래 상대방의 연령을 명확히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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