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하나의 태양, 다른 잣대 - 이격거리 규제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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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민 법무법인 엘프스 파트너 변호사]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햇빛이 아니다. 줄자다. 줄자 눈금이 곧 사업 허가의 기준이다. 태양은 하나인데 지자체마다 들이대는 자 길이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에서는 도로에서 100m 떨어져야 하고, 다른 곳에서는 1000m까지 떨어져야 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우주에 짓는 게 낫겠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하나의 태양을 두고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이격거리 규제의 현실이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23년 8.4%에서 2030년 18.8%, 2038년에는 29.2%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목표치를 더 상향할 계획까지 공언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햇빛 부족’이 아니라 ‘이격거리 규제’다. 발전소 입지를 확보하기도 전에 지도 위에서 금지구역이 먼저 결정된다.

이격거리 규제는 지자체 도시계획 조례를 통해 태양광·풍력 발전시설, 자원순환시설을 주거지·문화재·정온시설·관광지·도로·농지·하천 등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도록 정한 제도다. 문제는 이 거리가 지자체마다 100m에서 2000m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다.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아니라 지자체들이 민원 우려 등을 이유로 마음대로 정했기 때문이다. 인체에 해로운 미세먼지 농도가 서울과 제주도에서 다를 수 없는 것처럼 같은 태양을 쓰는 발전소에 이토록 다른 규제가 적용될 이유는 없다.

실제 현장에서는 더욱 극단적이다. 어떤 지자체는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격거리 제한을 피할 수 있는 부지가 없다. 이는 “우리 지역에서는 발전소를 세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오랜 기간 환경·에너지 분야 법률 업무를 수행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이격거리 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보고 있다.

올해 3월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태양광 잠재 입지의 62.7%가 이격거리 규제로 막혀 있다. 유럽은 아예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가 없고, 캐나다는 15m, 미국도 일부 주에서만 3m 정도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100~1000m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는 과학이 아니라 과잉 행정의 산물임이 명백하다.

이격거리 규제는 구체적인 환경적 영향의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규제 방식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소음, 경관 훼손 등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부지별로 충분히 검토된다. 그런데 이격거리 규제는 애초에 그 기회조차 차단한다. 구체적 타당성을 따지기도 전에 줄자로 일괄 배제하는 방식은 산업을 옥죄고 사회적 비용만 키운다.

국회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를 위한 개발행위허가 시 원칙적으로 이격거리 설정을 금지하되, 공공복리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 등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이소영 의원의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의안번호 2200724) 등 여러 안이 발의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하루빨리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고, 지자체는 ‘우리 동네만 빼고’를 외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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