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양자회담을 원한다면 모스크바로 오라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최소 7개국이 회담 장소를 제공할 뜻을 밝혔다며 적국에서 협상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3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젤렌스키 대통령과 양자회담에 대해 “가능하다”며 “마침내 젤렌스키가 준비된다면 그가 모스크바에 오게 하라. 그러한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을 때 이처럼 답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푸틴 대통령과 대면 회담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올해 3차례 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직접 협상 대표의 급을 높일 수 있지만 현재 러시아 측 협상단장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크렘린궁 보좌관의 역할에 만족한다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의 모스크바 회담 제안에 대해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푸틴은 고의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모두를 농락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시비하 장관은 오스트리아, 바티칸, 스위스, 걸프 국가 3곳 등 최소 7개국이 회담을 개최할 준비가 됐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회담에는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우크라이나의 행정부 수반 대행’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임기가 만료되고도 계엄 상황을 이유로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논의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모든 국가는 스스로 안전보장을 선택할 수 있다”며 “그러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의 안보를 희생한 안전보장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달 15일 알래스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면서 영토를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기한 적이 없다며 “우리는 절대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제시하거나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분쟁과 관련해 “터널 끝에 빛이 있다”며 해결 가능성이 보인다면서도 평화 협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러시아는 모든 일을 군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반미 작당 모의를 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푸틴 대통령은 유머를 반영한 발언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유머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고 모두가 이를 안다”며 “나는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서로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고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이 수년간 논의 끝에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프로젝트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면서 이를 통해 러시아가 중국에 연간 총 1000억㎥ 이상의 가스를 공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對) 러시아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던 중 취재진으로부터 ‘푸틴에 대한 실망감을 여러 차례 표현했는데, 취임 뒤 아무 조치를 안 했다’는 질문을 받고 “어떻게 아무 조치가 없다고 알고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당신은 그것을 무(無) 조치라고 하느냐. 나는 2단계나 3단계(제재 조치)는 아직 하지도 않았다”며 “그런데 그것을 무 조치라고 한다면, 당신은 새 직업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종전 협의가 더딘데도 푸틴 대통령에게 유화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강하게 반발하며 질문한 기자에게 핀잔을 준 것이다.
미국은 앞서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함으로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난달 27일부터 인도에 50%의 고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이에서 종전 중재 노력을 이어오는 한편, 러시아에 종전 합의가 없을 경우 강력한 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2단계나 3단계 제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 상원에서는 트럼프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 등이 대(對)러시아 제재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레이엄 의원과 민주당의 리처드 블루먼솔(코네티컷)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대러 제재 법안에는 러시아산 원유와 우라늄 등을 구매하는 국가의 대미 수출품에 50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