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중국 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중국 전용 AI 칩인 H20 수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허가를 얻어내자마자 이번엔 중국 정부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자국 기업의 H20 칩 사용에 제동을 걸면서다.
엔비디아를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은 착잡하다. 고마우면서도 멀리할 수 밖에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고급 AI모델 훈련·구동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90% 이상 장악하고 있다. 중국 빅테크(대형 인터넷기업)들이 AI추론 칩을 개발하며 반도체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고급 AI 모델 훈련을 위해선 아직까지 엔비디아 칩이 필수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전용 AI칩 H20에 대한 수출 통제가 풀리기 무섭게 중국 기업들이 70만개 규모의 H20 칩을 발주한 이유다.
그렇다고 마냥 엔비디아에 기댈수만은 없다. 엔비디아는 미국 기업이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으로 미국산 반도체 공급은 언제든 끊길 수 있다. 중국이 엔비디아 대체할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엔비디아 때문에 중국의 자존심도 구겨졌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달 H20 수출 통제 해제 소식이 나온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는 (엔비디아 AI 칩 중) 세 번째로 좋은 제품도 판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중국 지도부가 H20 칩에 대한 규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고성능 AI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미국 행정부의 지침에 따라 성능을 일부러 낮춰 대중 수출용으로 개발한 반도체다
중국은 현재 H20 칩에 위치 추적 장치가 설치돼 보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자국 업체에 국내산 칩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H20에는 그러한 기능이나 백도어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중 기술패권 갈등 속 엔비디아가 희생양이 된 셈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각 공급업체에 내렸던 H20 생산 주문도 다시 중단시켰다. 올 들어서만 세 차례 방중한 젠슨 황 CEO의 중국을 향한 구애 노력도 빛이 바래게 됐다.
물론 중국이 엔비디아와 ‘헤어질 결심’을 하기는 아직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AI 반도체의 필수 부품인 HBM을 만들기엔 중국 기술력은 아직 역부족이다. 중국이 최근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HBM에 대한 수출 통제를 완화해 줄 것을 원한다는 뜻을 밝힌 배경이다. HBM의 대중 수출 통제는 지난해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시행했다.
중국 내 사실상 유일한 D램 업체인 CXMT가 지난해 예상보다 2년 앞당겨 HBM2를 양산했지만, 여전히 마이크론, 삼성,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 7~8년 뒤처진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근 CXMT는 내년 HBM3(4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양산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본격화하며 글로벌 선두 기업과의 격차를 3~4년 내 좁히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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