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통폐합 스타트] "민간 주도 25% 감축 비현실적"…정부가 칼 빼들어야

  • 민간 주도로 에틸렌 최대 370만t 감축 구상

  • 필요성 공감하지만 성사 가능성 낮아

  • 담합 완화, 전기료 감면 등 추가 지원 필요

사진아주경제DB
[사진=아주경제DB]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작업에 시동을 걸었지만 실제 시행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석화와 정유업계를 망라해 10곳이나 되는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이견을 좁히고 정부가 제시한 에틸렌 생산량 25% 감축을 이뤄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화업계 사업 재편 자율 협약식을 진행하고 업계 컨설팅 결과를 반영해 민간 주도로 에틸렌 기준 270만~370만t 규모 나프타분해시설(NCC)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국내 에틸렌 생산량이 연 1280만t이었고 내년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1470만t으로 늘어난다. 전체 생산량 중 4분의 1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NCC는 원유에서 나온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석화 기초 원료를 만드는 시설이다. 현재 국내에서 NCC를 운영하는 기업은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한화토탈에너지스 △GS칼텍스 △HD현대케미칼 등 9곳이고 내년에는 에쓰오일까지 더해져 10곳으로 늘어난다.

글로벌 석화 시장은 중국과 중동 국가들의 범용 제품 증산에 따른 인위적 불황이 2022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 업계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2022년 3월 손익분기점인 300달러 밑으로 떨어진 후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역대 최저인 110달러 선까지 하락했고 현재 170달러 내외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화 업체들은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다. 이달 초 부도설이 불거진 여천NCC는 누적 적자로 운영자금이 바닥나 모회사인 한화·DL그룹이 300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도 했다.

정부 정책은 기업들이 여수, 울산, 대산 등 산단 3곳에 흩어져 있는 NCC 설비를 자율 통합하고 에틸렌 생산량을 내수에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감축하길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산산단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NCC 통합을 논의 중이다. 한화토탈이 논의에 합류하면 최종적으로 설비 통합을 이룰 수 있을 전망이다. 울산산단은 SK지오센트릭이 2021년 범용 석화제품에서 스페셜티(고부가가치)와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으로 주력 사업 전환을 선언한 만큼 대한유화와 설비 통합 가능성이 점쳐진다.

문제는 국내 최대인 여수산단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 GS칼텍스 등 주요 석화·정유 업체들이 모여 있는 만큼 설비 통합과 매각에 대한 업체 간 이견이 큰 상황이다. LG·롯데·한화그룹의 석화 산업 지속과 대규모 설비 투자금 회수에 대한 의지가 강해 통합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 개입 없이 민간 주도 통합이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실이 아닌 산업부 주도로 관련 정책이 발표된 데 대해서도 실망한 눈치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규제 일시 완화나 전기료 감면 등 추가 지원 정책은 대통령실이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각 부처를 일사불란하게 제어해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기업의 자율적 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과 함께 석화 산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며 "1970년대 정부 주도 중화학 육성 정책을 펼쳤던 것처럼 제2의 석유화학 육성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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