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철 스님]
종로구 송현공원의 존재는 인근 주민과 직장인·자영업자들에게 자연이 주는 더없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공원이다. 수시로 산책하면서 들꽃이 뿜어내는 풀향기와 계절마다 바뀌는 꽃나무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른 바 공세권(공원혜택지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공사로 인하여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세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습도 높은 더운 여름 날, 그 앞을 지나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쳐다보기만 해도 불쾌지수가 급속도로 상승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린송현 녹지광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하늘도 산도 열려있고 푸른 광장이 눈맛을 상쾌하게 했다. 공원이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지켜보면서 애용하는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행정관료들의 자연친화적 안목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건너편에는 빽빽한 빌딩들이 도열했고 뒤편에는 북촌의 기와집 단지와 이어지는 절묘한 자리에 인공구조물 없는 빈공간이 주는 ‘텅 빈 충만’은 비싼 터 값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배같은 무형의 정신적 상쾌지수를 매일매일 선사했다.

어떤 때는 녹지공원에 어울리지도 않는 뜬금없는 미술작품들이 잠시 서 있다가 없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려니!” 하고 지나갔다. 눈에 거슬리긴 해도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소품인지라 ‘말 못할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하면서 이해했다. 한 때는 어떤 정치인의 기념관이 들어온다고 애드벌륜을 띄우다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슬그머니 물러섰던 기억도 새롭다. 텅 빈 공간이 주는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뭔가를 채우려고 하는 개발만능시대의 사고방식은 이제 버릴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망령처럼 공무원 사회 주변을 떠돌고 있는 모양이다.
이른 아침 포클레인이 넓은 면적의 땅을 깊숙하게 파고 있었다.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다. 며칠 지나더니 레미콘 차량이 와서 철근 사이로 콘크리트 타설을 해댄다. 굳기가 무섭게 10개도 넘는 둥근 배관같이 생긴 거대한 쇠기둥과 철제로 된 계단 그리고 대형 하수관 같은 것을 서로 연결한다고 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이미 황토뻘이 되어버린 마당을 다시 짓이기고 있다. 게다가 직사각형 액자처럼 커다란 목재 대문형 구조물 수십 개가 여기저기 줄지어 서 있다.
공원 가운데를 중심으로 빙 둘러 파란 비닐로 담장을 쳤다. 분명 임시로 만들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철거할 구조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원의 가장자리 주변부 혹은 구석자리에 배치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지만 산책하는 주민·직장인·자영업자들과 방문하는 관광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배려심은 두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넉 달을 공사한다고 막아놓겠다는 그 두둑한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대단한 강심장들이다. 주민주권시대에 오만한 행정력의 횡포를 맘껏 과시하고 있다.

서울시청 미래공간 기획실 명의로 ‘도시건축 비엔날레 주제전 작품설치’를 한다고 둘러 친 비닐벽에 써두었다. 공사기간 4개월 동안 불편함이 예상되니 양해를 바란다는 상투적인 면피용 문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엇을 감추려는지) 완공 후 조감도는 아예 게시하지도 않았다. 이런 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송현공원에 설치하게 되었는지도 역시 알 수 없다. 짐작컨대, 결정권자의 개취(개인취향)와 ㅇㅇ위원회의 요식행위와 실무자의 ‘쉬운 장소’ 찾기가 어우러진 합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인근 주민들과 공원 이용도가 높은 직장인·자영업자들의 의견 수렴절차는 어떤 식으로 밟았는지 묻고 싶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열린송현 녹지광장’이라는 공원명칭에 반하는 조치로 귀결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십 개의 거대한 쇠기둥이 북한산과 인왕산을 가릴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가리고 있다. (보나마나 앞으로 번쩍번쩍한 구조물이 덧입혀질 것이다.) 열린 공원이 아니라 가려진 공원이 되었다. 녹지광장은 가운데를 무참하게 잠식당한 채 구멍난 도넛을 연상시키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남은 땅은 광장이라기보다는 아예 자투리 땅이라고 부르는 게 옳겠다. 작은 지방도시도 공터만 생기면 공원을 만드는 추세인데 특별시가 틈만 있으면 있는 공원도 야금야금 잠식하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거대한 인공구조물이 도리어 위압적인 자세로 자연공원을 훼손하는 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무거움으로 닿아온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상황이라고나 할까.

하나마나한 말이겠지만 시크하게 한 마디 보태야겠다. 도시건축으로 주제전을 하겠다면 차라리 시청 앞 광장에 설치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결정권자와 실무자가 수시로 사무실 창문을 통해 하루하루 진척도를 확인할 수 있고 매일 매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비타민C 노릇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주민도 별로 없는 곳이니 민원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공사기간과 전시기간 중 일어나는 민폐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미 높다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주변과의 조화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겠다.
단언컨대 인공미는 절대로 자연미를 대체할 수 없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데 앞으로 경복궁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고개를 돌리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발걸음마저 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육백년 역사의 전통적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거대한 구조물 관광을 ‘강요’하는 일이 될까봐 적이 걱정스럽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인사동 북촌주민들의 불만도 차곡차곡 누적될 것이다. 언젠가는 일인시위 또는 서명운동을 하다가 급기야 동네사람들까지 손팻말을 들고서 아래 위로 흔들면서 “제발 송현공원을 자연 그대로 둬라”며 화가 잔뜩 난 목소리를 외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 즉시 넥타이 부대까지 가세할 것이다. 큰 기와집 높은 담장에는 시커먼 고딕체 큰 글씨로 쓴 ‘송현공원 보존위원회’가 발족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송현공원 탄생부터 오늘까지 가까이에서 살게 되었다. 24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소나무 언덕’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에 어울릴법한 하늘과 산이 훤히 보이는 열린 송현공원 그리고 녹지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걸리적거리는 것 없는 지평선 같은 시원한 풍광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길 바랄 뿐이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연구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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