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준 논설주간]
필자는 10년 전인 2015년 7월 5일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주간 주간조선에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천안문 위에 서야 한다”는 글을 썼다. 당시 필자는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로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자격으로 그 글을 썼다.
10년이 흐른 2025년 7월 22일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9월 3일 천안문 위에 선다면…”이라는 글을 쓰려고 한다. 오는 9월 3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일’ 군사퍼레이드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10년 단위가 꺾어지는 해에 하는 행사를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의 관념에 따라 중국 정부는 10년 만인 오는 9월 3일 천안문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일’에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을 초청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 마오닝(毛寧) 대변인은 지난 2일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해당 행사에 이재명 한국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해당 행사에 외국 지도자들을 초청했으며 각국과 의사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1945년 9월 2일 오전 9시 일본 도쿄만(東京灣)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있었다. 20분 정도 진행된 항복문서 조인식에는 미국 대표로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MacArthur) 장군이 목 양쪽 옷깃에 별 다섯 개를 달고 나왔고, 일본 측에서는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외무상이 히로히토(裕仁) 일왕을 대신해서 나왔다. 항복문서 일어본에는 히로히토 일왕과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王) 총리대신 이하 14명의 내각이 연명으로 서명했다. 미주리 함상에서 영어본에 서명한 사람은 외무상 시게미쓰였다.
당시 항복문서 조인식 광경을 녹화한 미국 유나이티드 뉴스(United News) 동영상을 보면 미주리 함상에는 먼저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미국·중국·영국·소련·프랑스·네덜란드·호주·캐나다·뉴질랜드 대표가 갑판에 올라와 있었고, 일본 외상 시게미쓰는 나중에 작은 연락선을 타고 미주리 함상으로 올라왔다. 미주리함 갑판에 올라선 시게미쓰 외상은 지팡이를 짚고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게미쓰가 다리를 절며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데 대해 유나이티드 뉴스 앵커는 “시게미쓰 외무상은 몇 년 전 상하이에서 ‘Korean patriot(한국인 애국자)’에게 공격을 당해…”라고 설명했다.
시게미쓰의 다리를 절게 만든 ‘한국인 애국자’가 누구일까. 윤봉길 의사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현 루쉰<魯迅>공원)에서 열린 일왕 출생 기념일 천장절 기념식에 참석한 일본 군인들에게 폭탄을 던져 많은 일본 장성을 죽인 그 현장에 시게미쓰는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로 참석했다. 그랬다가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오른쪽 다리가 날아가 버렸다. 그로부터 13년 후 도쿄만에서 열린 항복문서 조인식에 오른쪽 다리를 의족으로 하고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것이었다. 시게미쓰는 1887년생 도쿄대 법대 출신으로 일 외무성에 들어가 외무상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오른쪽 다리를 잃고 58세에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미주리 함상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중국 측은 국민정부군(국부군) 군사위원회 군사령부장 쉬융창(徐永昌) 장군이 참석했다. 1945년 9월 2일 당시는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은 일본 제국주의에 힘을 합쳐 대응한다는 뜻의 ‘국공합작’ 기간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것은 4년 뒤인 1949년 10월 1일이었다. 1946년 4월 중국국민당은 중앙상무위원회 결정으로 항복문서 조인식 다음 날인 9월 3일을 승전기념일로 공포해서 휴일로 지정했다. 중국공산당이 수립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49년 12월 23일 승전기념일을 8월 15일로 반포했다가 1951년 8월 13일 정무원령으로 승전기념일을 9월 3일로 변경했다. 그랬다가 2014년 2월 27일 승전기념일로 확정 발표하면서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 겸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일’로 지정해서 9월 3일부터 6일까지 나흘간을 연휴로 지정했다.
중국이 말하는 ‘반(反)파시스트 전쟁’이란 2차 대전의 다른 말이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정부가 파시스트(Fascist·전체주의자)들이며, 세 나라의 파시스트들이 일으킨 전쟁을 미국·영국·중국·소련·프랑스 등이 맞서 싸워 패배시킴으로써 2차 대전이 종결됐다고 본다. 1945년 9월 2일 미주리 함상에서 있었던 일본 군국주의의 항복문서 조인식에 연합국 대표들이 참석한 것도 바로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이뤄진 것이다. 중국은 국부군 대표인 쉬융창 장군이 중국의 국민대표로 조인식에 참석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항복문서 조인식 다음 날인 9월 3일을 승전기념일로 지정했다.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중국에서 힘을 합해 항일전쟁을 벌인 것을 우리 한국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24세의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한민족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고,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를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와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게 깊이 각인시킨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윤봉길 의거로 더 이상 상하이에 주재하지 못하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저우(杭州)를 비롯한 여러 중국 남부 도시를 전전하다가 충칭(重慶)까지 옮겨 갔다. 충칭에 번듯한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는 데에는 마오쩌둥의 지시를 받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상당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상하이 중국 학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9월 3일 베이징(北京) 천안문광장에서 열리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와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일’ 퍼레이드 때 천안문 위에 올라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사열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윤봉길 의사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할 책임을 지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왕 생일 기념식에 폭탄을 던져 미주리 함상의 항복문서 조인식에서 서명한 일본 외무상 시게미쓰의 다리를 불구로 만든 윤봉길 의사의 넋을 위로하는 뜻에서라도 중국 정부가 준비한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천안문 위에 올라 시진핑을 포함한 전 세계 지도자들과 함께 사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1945년 8월 14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 방송을 한 다음 날인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하고 기념해 왔다. 당시 일본 왕의 항복 방송은 다소 슬픈 어조로 방송돼 일본인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일본 왕의 슬픈 항복 방송 음성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윤봉길 의사가 다리를 부러뜨린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상이 미주리 함상에서 절뚝거리며 항복문서에 조인하는 광경을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오는 9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천안문 위에 서서 중국군의 퍼레이드를 다른 승전국 대표들과 함께 사열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야 윤봉길 의사의 의거도 완성되는 것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다.
10년 전 전승절 70주년에는 49개국 국가원수와 대표들이 천안문 성루에 올랐고, 한가운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 오른쪽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다음이 박근혜 대통령, 세 사람 건너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 오른쪽 끝에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위원이던 최룡해가 서고, 시진핑 왼쪽에는 중국공산당 상무위원들이 서는 대열이 형성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미국과 중국이 갈등하는 현 국제정세에서 결정적으로 중국 곁에 서게 되는 형세를 만든다는 국내의 우려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으로 중국을 글로벌 패권국가의 대열에서 탈락시키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중국이 주도하는 전승절 군사퍼레이드를 천안문 망루 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서서 사열한다는 것은 모양상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판단을 우리 외교당국은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기념하는 전승절은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다. 전승절은 80년 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군과 연합군이 거두었던 항일전쟁 최종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라는 점을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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