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도봉구 창동에 새롭게 문을 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2층 전시실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 30~40명의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조용한 정적을 깨고 도슨트 고윤영씨의 해설이 시작되자 전시는 서서히 풍경이 되고 풍경은 하나의 이야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고윤영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도슨트는 “창동의 뜻을 아시나요? 창동은 창고가 많아서 생긴 동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고윤영 도슨트의 첫마디는 이 동네의 과거를 현재의 공간에 겹쳐 놓았다. 과거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는 이제 예술과 기억, 이미지와 사유를 저장하는 새로운 ‘창(倉)’으로 탈바꿈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으로 개관한 이 사진미술관은 국내 유일의 공립 사진 특화 미술관이다. 이곳에서는 ‘광(光)적인 시선’이라는 주제로 개관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10여년에 걸쳐 집요하고 꾸준히 이어진 건립 준비 과정과 결과를 담아내고 빛으로 그려낸 사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 애정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처음 눈길을 끄는 건 건물 그 자체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건물 외관은 사진이 빛과 시간을 담는 방식을 표현했다고 한다. 건물의 외관은 내부 전시에도 신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표현한 원성원 작가는 작품 속 자연의 모습을 비정형의 전시 공간에 함께 구현해 냈다. 공간 전체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셈이다.
고윤영 도슨트는 “(작가는)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한 재료들이 자연에서 왔다는 점에 착안해 건축물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뜻을 담아냈다”며 “자연이 변화하는 것처럼 실제 전시가 이어지는 10월 달에 다시 오면 전시 공간이 가을의 모습을 띄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층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스토리지 스토리’에는 원성원 작가를 포함해 서동신, 오주영, 정멜멜, 정지현, 주용성 등 동시대 작가 6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기록사진,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 창동 지역의 변화, 사진미술관의 탄생, 시대의 흐름 등을 풀어냈다.

3층에서는 개관특별전의 또 다른 전시인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이 진행 중이다. 지난 10여 년간 수집된 소장품 중 한국 사진 예술사에서 전환점을 만든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정해창, 임석제, 이형록, 조현두, 박영숙 등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한 역사의 흔적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미술관은 이 두 전시를 통해 사진이 단순히 ‘기록의 도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진 예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조망하는 이 공간은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의 새로운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사진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1층 로비와 포토북카페, 4층 포토라이브러리와 교육실은 사진을 매개로 소통하고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성인을 위한 사진 제작과 이론 아카데미, 어린이를 위한 창의적 시각 표현 수업, 지역 주민을 위한 맞춤형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도슨트 해설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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