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고 블록처럼 미리 제작된 구조체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의 모듈러 주택 기술은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공사 기간 단축과 친환경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현실의 벽도 높다. 초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야 하고 기존 방식보다 공사비가 비싸 건설사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장에서 80% 이상 부재를 사전 제작한 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방식은 공사 기간을 약 30% 단축할 수 있어 생산성 향상과 건설업계 인력난 해소, 안전사고 감소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또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건축 방식이기 때문에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과 맞물려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도 현장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어 모듈러 공법이 활성화되면 기존의 건축 패러다임을 크게 바꿀 수 있다고 보고 모듈러 건축 시장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 규모는 2019년 324억원에서 2023년 8059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정부도 공공임대 모듈러주택 발주 물량을 지난해 1000가구에서 올해 2000가구로 확대했고, 2026년 이후에는 3000가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모듈러 건축 산업을 둘러싼 기대와 현실은 아직까지 그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가장 큰 장애물로 기존 철근 콘크리트 방식을 적용했을 때보다 모듈러 방식의 공사비가 최대 50%까지 높다는 점을 꼽는다. 특히 모듈러 대량 생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초기 투자 비용이 높아져 비용 부담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철근 콘크리트 방식과 비교했을 때 공사비가 30~50% 높아진다"라며 "모듈러 주택이 사업성 면에서 불리한 상황이고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으면 사업 확장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이앤씨가 최근 모듈러 사업 부문 매각을 결정한 이유도 낮은 수익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포스코이앤씨의 자회사 포스코에이앤씨 건축사사무소는 지난 5월 20일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고 모듈러 제작과 설치 사업 일체를 모듈러 전문기업인 유창이앤씨에 양도하기로 했다. 비용과 함께 수요처가 다양하지 않고 시장 규모도 크지 않아 주력 사업으로 가져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설계와 시공이 분리 발주되는 건설 현장의 발주 형태도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모듈러 공법은 설계 단계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 하나의 프로세스로 진행돼야 하는데, 기존 주택처럼 전기와 통신, 소방설비 등을 분리 발주할 경우 비용과 공사 기간이 증가하는 등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LH 관계자도 "모듈러 사업은 현장보다 공장 생산 위주다 보니 분리 발주 형식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제도상 제한이 있기 때문에 사업 활성화를 위해 모듈러 사업에 필요한 예외 적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먼저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사업인데도 수요가 수도권 외에 없다는 점도 불리한 조건"이라며 "대량 생산을 통한 단가 인하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듈러 장점은 공사 기간 단축"이라며 "지금처럼 공공이 주도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업성이 확인되면 민간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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