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은행에서 최근 시재금(영업점 보관 현금) 횡령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모출납 자동화기기(모출납기) 대신 수기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들이 시재금 관리를 자동화해 금융사고를 줄이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모습이어서 농협은행 내부통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모든 시중은행이 도입한 모출납기를 운영하지 않고 여전히 지점 내 모출납 담당자가 시재를 전담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출납기 도입은 농협은행 노동조합이 작년부터 요구해온 사안이지만 논의가 중단돼 올해 다시 건의사항으로 올라왔다.
모출납기는 고객 창구 직원과 영업점 금고 간 현금 인수·인계 과정을 자동화한 기기다. 시재금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보안을 강화해 횡령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됐다. 2008년 말 신한은행을 시작으로 국내 시중은행들이 차례로 도입해 현재는 대부분 영업점에서 사용 중이다. 최근엔 고도화된 스마트 시재관리기까지 가동되고 있다.
모출납기를 이용하기 전에는 통상 은행 창구 직원이 서랍 속에 개인 시재함을 두고 일정 규모 이하인 현금을 직접 관리·보관하는 방식으로 시재금이 관리됐다. 수작업으로 시재를 확인하고 밤사이 서랍에 현금을 보관하기 때문에 횡령이나 분실 위험에 쉽게 노출됐다.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현금은 출납담당자가 금고에 보관하지만 이 역시 업무 부담이 컸다. 반면 모출납기는 인수·인계 과정이 자동으로 기록돼 실수나 조작을 줄이고 시재 관리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농협은행은 여전히 과거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내부통제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경기 의왕시 한 영업점에서는 6급 계장보 직급인 신입 행원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13차례에 걸쳐 시재금 2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적발됐다. 비슷한 시기 경기도 또 다른 영업점에서도 직원이 시재금 200만원가량을 횡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동입출금기(ATM) 시재금 2400만원을 신입 직원이 빼돌린 사건도 있었다.
농협은행은 금융사고 건수와 금액 모두에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사고 건수는 16건으로 국내 은행권(시중·지방·국책은행을 포함한 15개 은행) 중 가장 많았으며 사고 금액은 약 454억원으로 KB국민은행(약 694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다만 농협은행 측은 여전히 모출입기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모출납기는 단순 현금 인수도 기기이기 때문에 위변조 화폐 감별이 어렵고, 시재 사고를 예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도입 비용에 비해 효용성이 크지 않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해 도입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모출납기와 스마트 시재관리기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신한·국민은행은 모출납기를 각각 약 450대 보유하고 있으며 스마트 시재관리기도 10~80대 수준으로 확대 중이다. 하나은행은 모출납기 102대를 운영 중이며 우리은행은 지난 3월부터 스마트 시재관리기 10대를 시범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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