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43) 바람이 불자 알아서 눕다 - 망풍이미(望風而靡)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전한(前漢)의 제7대 황제 한무제((漢武帝, 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는 한족 최고의 정복군주다.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공식화했으며 적극적인 대외 원정을 통해 중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그의 치세는 이른바 '한무성세(漢武盛世)'로 일컬어지며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한무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하여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확립했지만, 치세 후반으로 갈수록 무리한 토목공사와 흉노와의 기나긴 전쟁 등으로 인해 백성들은 부역에 시달리고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거대해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징수했고, 특히 황제 1인에 집중된 권력은 즉흥적이고 불 같은 성정과 맞물리며 공포정치로 이어져 조금이라도 황제의 눈에 벗어나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흉노에 패한 장군 이릉을 변호한 사마천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생식기를 거세하는 궁형에 처한 것은 잘 알려진 사례다. 이같은 실책과 문제점이 쌓이면서 훗날 전한이 붕괴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대외적으로는 유교를 국교로 표방했지만 한무제의 통치방식은 법가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의 치세는 '진황한무(秦皇漢武)'로 불리기도 한다. 법가에 의한 통치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진시황에 비견될 만큼 가혹한 정치를 했다는 비유다. 한무제가 펼친 폭정의 손발이 되어 실무를 집행한 혹리(酷吏)가 두주(杜周)라는 인물이다. 실력을 바탕으로 무제의 신임을 받은 법률 전문가 두주는 매우 엄격하고 공정한 법 집행으로 이름을 날렸다. 사법 최고 책임자인 정위(廷尉)를 담당했으며 부정과 비리를 단호히 다스렸다. 

두주의 법 집행이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법의 원칙보다는 한무제의 뜻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강했다. 한무제가 처벌을 원하면 죄가 없더라도 유죄를 만들어내고, 한무제가 봐주기를 원하면 명백한 죄도 모른 척하거나 일단 구금했다가 슬쩍 풀어주기도 했다. 권력의 입맛에 맞춘 자의적인 법 해석은 ‘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무제의 의중을 헤아려 사마천을 판결한 사람도 두주였다.

그렇기에 두주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양면적이다.《한서》의 저자 반고(班固)는 형법을 엄정하게 적용한 유능한 사법 관료로서의 두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황제의 의중에 휘둘리는 법 집행자로서의 한계도 함께 지적했다. 게다가 두주의 법 집행 방식은 매우 혹독하고 잔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 쓰러질 정도였다.《한서(漢書)ㆍ두주전(杜周傳)》에 이런 글귀가 있다. 

“天下莫不望風而靡, 自尚書近臣皆結舌杜口, 骨肉親屬莫不股慄(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의 기세에 눌려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상서나 황제의 측근 신하들조차도 혀를 깨물고 입을 다물었으며, 가까운 혈육 친척들마저도 두려워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당시 천하 백성과 조정 대신들이 권력 앞에서 숨을 죽이고 공포에 휩싸여 복종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반고의 이 서술에서 ‘바람을 보고 풀들이 쓰러진다'는 뜻의 성어 '망풍이미(望風而靡)'가 유래하였다. '망풍이미'는 누군가의 위세나 명성이 너무 커서 그 기세에 눌려 복종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비유한다. 절대권력 앞에서 사람들이 저항 없이 순응하는 상황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

바람이 불면 풀이 눕듯 ‘망풍이미’는 권력의 향방을 보고 스스로 알아서 눕는 인간 군상을 상징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이 고사성어를 곱씹게 만드는 장면들로 넘쳐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자신의 선거법 위반을 대법원이 유죄로 결론짓고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을 하자 민주당을 앞세워 노골적인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 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를 밀어붙이고 대법원장을 특검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법관을 줄탄핵하겠다고 으름짱을 놓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는 스토킹에 가깝게 뒷조사하여 언론에 흘리고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도덕성에 흠집을 낸다. '대법관 30명 증원법', '법 왜곡죄' 판사 처벌법, 사실상 4심제를 하겠다는 '재판소원 허용법', '김어준 대법관법'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비(非)법조인 대법관 임명법' 등 사법부를 뿌리째 뒤흔드는 법안들을 무더기로 발의하고는 사법개혁이라고 포장한다.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없애 줄 방탄법, 소위 '이재명 면소법' 입법 처리도 빼놓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사법부 공격의 선봉에 선 민주당 의원들은 한무제의 의중을 헤아려 법봉을 휘두른 두주와 다를 바 없다. 이재명의 두주들이 법봉 대신 의사봉을 휘두르며 충성경쟁 하듯 사법부를 겁박하니 과연, 공직선거법 재판 등 이재명과 관련된 모든 재판이 대선 이후로 연기되고 판사들은 자신들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성토하는가 하면 내부 갈등의 조짐도 보인다. 민주당에 의해 탄핵소추되었다가 업무에 복귀한 검사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명한 것도 현대판 두주들의 서슬에 놀란 탓일 게다. 바람이 불자 스스로 눕는 망풍이미적 처신들이다. 

사법부를 겨냥한 민주당의 거친 공세 속에 '사법부 독립'이 이번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이재명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행정권력도 접수하게 된다. 민주당 정부가 입법권을 활용해 사법부마저 장악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니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절대권력의 탄생이다. 삼권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자 이재명을 대체 무엇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한다고 공언하던 분 아닌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저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민주적 규범'을 무시할 때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민주주의가 독재화되는 데에는 각본이 있다. 언론을 파괴하고 법원의 독립을 파괴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 폴란드의 카친스키, 헝가리의 오르반이 자국의 민주주의를 그렇게 무너뜨렸다.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김수영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시 '풀'은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민초의 생명력을 시어에 담았다. 망풍이미와 김수영의 '풀'은 같은 사물을 보되 전혀 다른 인간상을 그린다. 전자가 권력에 순응하는 자발적 복종의 초상이라면, 후자는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주체적 저항의 선언이다. 바람은 늘 분다. 우리는 그 바람 앞에서 어떤 풀이 될 것인가.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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